엽기적이고 영리한 그녀…당신 마음 다 알아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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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마음 다 알아요. 정말?
명실공히 최고의 여배우에 속하는 전지현은 기이하게도 영화 쪽에서는 문제작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물론 흥행작은 많다. ‘엽기적인 그녀(2001)’가 그랬고 ‘도둑들(2012)’이 그랬다. 발랄하고 되바라진 역할을 했을 때 영화는 터졌던 셈이다. 그러나 미안한 얘기지만, 두 영화 모두 기억할 만한 수준의 연기력은 아니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그녀’보다 ‘그’, 곧 차태현의 희생(?)적인 연기가 더 돋보였다. ‘도둑들’은 케이퍼 무비(Caper Film : 강탈 영화, 떼도둑 영화)였고 모든 배우가 다 ‘원 오브 뎀’이었다. 특기할 만한 연기가 못됐다. 글쎄…, 밧줄을 타고 건물을 오르내릴 때 보여줬던 S라인 몸매의 비주얼? 남성 관객들에게 피핑 톰(엿보기)의 욕망을 자극시킨 것이라고 얘기한다면 극히 반(反)여성주의적 작태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전지현의 영화 중 평생 못 잊을 연기의 작품은 2013년 류승완이 만든 ‘베를린’이다. 여기서 전지현은 공화국 최고 요원 표종성(하정우)의 아내 련정희로 나온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 류승완은 자신의 영화를 가리켜 ‘일종의 러브 스토리’라고 불렀는데 그건 순전히 련정희라는 캐릭터 때문이고 그건 또 이 역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 낸 전지현 때문이었다. 련정희는 표종성의 품에 안겨 죽는데, 여자는 남자의 등을 힘겹게 껴안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빗발치는 총탄 중 한발을 맞고 치명상을 입은 상태다. 여자는 자신을 끝까지 지키려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그러지 말라는 듯이, 이제 다 괜찮다는 듯이 말한다. “당신 마음 다 압네다.”영화 ‘베를린’은 그 대목에서 눈물의 신파를 일으킨다. ‘베를린’은 표종성이 련정희를 의심했던 일로 시작해 자신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애절하게 확인하는 데서 끝난다. 완벽한 러브 스토리 영화인 것이 맞다. 련정희는 당의 명령(정확하게는 북한 대사 리학수의 요청)으로 때로는 독일 베를린에 와있는 고위급 인사에게 섹스 에스코트를 한다. 그녀는 그것이 조국에 대한 충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변화와 그에 따른 남편의 추락을 막고 두 사람이 생존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결국 표종성의 아기를 갖는다. 그걸 숨기고 그녀는 병원을 다니지만 남자는 그녀가 자본주의 적국에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오랜 연인 사이였고 부부지만 서서히 신뢰에 금이 가는 중이다. 그건 마치 당과 이 둘의 사이, 정치와 연애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련정희는 표종성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알고 표종성은 련정희가 자신의 의심을 안다는 것을 안다. 동명수(류승범)가 이끄는 북한 공작원들이 둘을 급습할 때 간신히 화장실로 피한 둘 사이에 긴장이 흐른다.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 칼을 들이댄다. 사랑이 식은 남자, 그 가슴 속에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차 있는 남자만큼 더 미운 사람은 없다. 사랑이 없어진 이상 목숨을 구걸하거나 이어갈 이유가 없다. 여자는 남자를 죽이려 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구하기 위해, 다시 사랑하기 위해, 아니 의심했던 자신을 용서받기 위해 목숨을 건다. 맞다. 영화 ‘베를린’은 러브 스토리였고 련정희(=전지현)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전지현은 비련의 이미지, 혹은 다소 비장할 때가 더 좋다. ‘도둑들’을 만든 최동훈이 2015년에 만든 ‘암살’에서 안옥윤(미치코와 1인2역) 때도 그랬다. 그녀는 강철 독립운동가이고 둘째 가라면 서러운 명사수 저격수지만, 자신이 한낱 껄렁껄렁한 국제 사기꾼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사랑에 빠질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은 밀정인 염석진(이정재)과 일본군들에 의해 쫓기게 되고, 하와이 피스톨은 안옥윤을 살리기 위해 단신으로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안옥윤은 그때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리는데, 이 장면도 역시 전지현이 연정(戀情)의 연기에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안옥윤은 염석진을 암살할 때 이미 고인이 된 백범 김구의 명령어를 되뇌인다.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전지현은 연약한 이미지의 여성일수록 그 내면에 얼마나 고귀하고 강고한 철의 의지가 숨겨져 있는 지 이 한 대목의 대사와 장면 하나로 완수해낸다. 미모로 흥한 여배우, 연기력으로 더 흥한다는 영화계의 원칙 하나를 제대로 보여준다.
‘엽기적인 그녀’만큼 인기를 모았고 특히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모았던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도 전지현을 톱 스타덤 중의 톱 스타덤으로 올려 놨지만, 위의 언급대로 그러저러한 의미에서 전지현이란 배우 스스로 제1의 작품으로 꼽지는 않을 것이다. 팬시(fancy)한 연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 결국 명멸한다. 팬시한 연기를 업으로 하는 여배우는 턱살이 늘어지고 볼살이 처지기 시작하면 스스로가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많다. 전지현은 그걸 잘 아는 배우이다. 영리하다.‘킹덤 : 아신전’을 선택한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솔직히 전지현은 ‘아신전’에서 보다 ‘킹덤2’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오 한 컷으로 나올 때 더 압도적이었다. 사람들은 소리쳤다. “시즌2에 전지현이 나와! 시즌3에서 전지현이 생사초의 비밀을 밝혀내나 봐!” 한 컷으로 전작(全作)을 압도하는 배우. 전지현이 이뤄 낸 성과이다.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상당부분 잊혀졌지만 전지현의 출연작 중에는 이수연 감독이 2003년에 만든 ‘4인용 식탁’도 있다. 전지현은 여기서 귀신을 보는 여자 ‘연’이란 역을 맡았는데, 역시 죽은 자를 보는 능력이 있는 남자 정원(박신양)에게 4인용 식탁을 가리키며 “애들을 왜 여기서 자게 하나요? 침대에 눕히세요.”라고 말해 사람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약간 멍하면서 백치미가 있는 역할을 그 옛날, 연기 초창기 시절에 해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배우는 연출을 잘 만나야 한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기대하건대 전지현이 ‘잊지 못할 사랑(An Affair To Remember)’같은 영화에서 데보라 카(리메이크판에서는 아네트 베닝) 역할을 하면 제격이겠다. 여자 테리는 남자 니키(캐리 그랜트)를 만나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못쓰게 된다. 수소문 끝에 여자를 찾은 남자를 소파 위에 앉은 채 맞는 여자는 무릎 담요로 다리를 감춘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바람맞혔다고 비난하다가 발코니에 놓여 있는 휠체어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책한다. 남자의 자책과 깨달음, 성찰은 종종 여자의 희생과 헌신에서 나온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니키를 사랑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을 버리게 하려는 여자 테리. 그 마음 속의 폭풍을 전지현이 연기하면 잘 하지 않을까. 이 영화 한국에서 리메이크하면 좋지 않을까. 전지현은 사랑 연기를 잘하니까. 당신 마음을 잘 아는 여자니까. 그리하여 만인의 연인이니까.
명실공히 최고의 여배우에 속하는 전지현은 기이하게도 영화 쪽에서는 문제작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물론 흥행작은 많다. ‘엽기적인 그녀(2001)’가 그랬고 ‘도둑들(2012)’이 그랬다. 발랄하고 되바라진 역할을 했을 때 영화는 터졌던 셈이다. 그러나 미안한 얘기지만, 두 영화 모두 기억할 만한 수준의 연기력은 아니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는 ‘그녀’보다 ‘그’, 곧 차태현의 희생(?)적인 연기가 더 돋보였다. ‘도둑들’은 케이퍼 무비(Caper Film : 강탈 영화, 떼도둑 영화)였고 모든 배우가 다 ‘원 오브 뎀’이었다. 특기할 만한 연기가 못됐다. 글쎄…, 밧줄을 타고 건물을 오르내릴 때 보여줬던 S라인 몸매의 비주얼? 남성 관객들에게 피핑 톰(엿보기)의 욕망을 자극시킨 것이라고 얘기한다면 극히 반(反)여성주의적 작태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전지현의 영화 중 평생 못 잊을 연기의 작품은 2013년 류승완이 만든 ‘베를린’이다. 여기서 전지현은 공화국 최고 요원 표종성(하정우)의 아내 련정희로 나온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 류승완은 자신의 영화를 가리켜 ‘일종의 러브 스토리’라고 불렀는데 그건 순전히 련정희라는 캐릭터 때문이고 그건 또 이 역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 낸 전지현 때문이었다. 련정희는 표종성의 품에 안겨 죽는데, 여자는 남자의 등을 힘겹게 껴안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빗발치는 총탄 중 한발을 맞고 치명상을 입은 상태다. 여자는 자신을 끝까지 지키려는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 보며, 그러지 말라는 듯이, 이제 다 괜찮다는 듯이 말한다. “당신 마음 다 압네다.”영화 ‘베를린’은 그 대목에서 눈물의 신파를 일으킨다. ‘베를린’은 표종성이 련정희를 의심했던 일로 시작해 자신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애절하게 확인하는 데서 끝난다. 완벽한 러브 스토리 영화인 것이 맞다. 련정희는 당의 명령(정확하게는 북한 대사 리학수의 요청)으로 때로는 독일 베를린에 와있는 고위급 인사에게 섹스 에스코트를 한다. 그녀는 그것이 조국에 대한 충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변화와 그에 따른 남편의 추락을 막고 두 사람이 생존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결국 표종성의 아기를 갖는다. 그걸 숨기고 그녀는 병원을 다니지만 남자는 그녀가 자본주의 적국에 넘어갔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오랜 연인 사이였고 부부지만 서서히 신뢰에 금이 가는 중이다. 그건 마치 당과 이 둘의 사이, 정치와 연애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련정희는 표종성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을 알고 표종성은 련정희가 자신의 의심을 안다는 것을 안다. 동명수(류승범)가 이끄는 북한 공작원들이 둘을 급습할 때 간신히 화장실로 피한 둘 사이에 긴장이 흐른다. 여자는 남자의 가슴에 칼을 들이댄다. 사랑이 식은 남자, 그 가슴 속에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차 있는 남자만큼 더 미운 사람은 없다. 사랑이 없어진 이상 목숨을 구걸하거나 이어갈 이유가 없다. 여자는 남자를 죽이려 하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구하기 위해, 다시 사랑하기 위해, 아니 의심했던 자신을 용서받기 위해 목숨을 건다. 맞다. 영화 ‘베를린’은 러브 스토리였고 련정희(=전지현)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전지현은 비련의 이미지, 혹은 다소 비장할 때가 더 좋다. ‘도둑들’을 만든 최동훈이 2015년에 만든 ‘암살’에서 안옥윤(미치코와 1인2역) 때도 그랬다. 그녀는 강철 독립운동가이고 둘째 가라면 서러운 명사수 저격수지만, 자신이 한낱 껄렁껄렁한 국제 사기꾼 하와이 피스톨(하정우)과 사랑에 빠질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은 밀정인 염석진(이정재)과 일본군들에 의해 쫓기게 되고, 하와이 피스톨은 안옥윤을 살리기 위해 단신으로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안옥윤은 그때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리는데, 이 장면도 역시 전지현이 연정(戀情)의 연기에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안옥윤은 염석진을 암살할 때 이미 고인이 된 백범 김구의 명령어를 되뇌인다.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전지현은 연약한 이미지의 여성일수록 그 내면에 얼마나 고귀하고 강고한 철의 의지가 숨겨져 있는 지 이 한 대목의 대사와 장면 하나로 완수해낸다. 미모로 흥한 여배우, 연기력으로 더 흥한다는 영화계의 원칙 하나를 제대로 보여준다.
‘엽기적인 그녀’만큼 인기를 모았고 특히 중국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모았던 TV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도 전지현을 톱 스타덤 중의 톱 스타덤으로 올려 놨지만, 위의 언급대로 그러저러한 의미에서 전지현이란 배우 스스로 제1의 작품으로 꼽지는 않을 것이다. 팬시(fancy)한 연기는 오래 가지 않는다. 결국 명멸한다. 팬시한 연기를 업으로 하는 여배우는 턱살이 늘어지고 볼살이 처지기 시작하면 스스로가 무너져 내리는 경우가 많다. 전지현은 그걸 잘 아는 배우이다. 영리하다.‘킹덤 : 아신전’을 선택한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솔직히 전지현은 ‘아신전’에서 보다 ‘킹덤2’의 마지막 장면에서 카메오 한 컷으로 나올 때 더 압도적이었다. 사람들은 소리쳤다. “시즌2에 전지현이 나와! 시즌3에서 전지현이 생사초의 비밀을 밝혀내나 봐!” 한 컷으로 전작(全作)을 압도하는 배우. 전지현이 이뤄 낸 성과이다.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상당부분 잊혀졌지만 전지현의 출연작 중에는 이수연 감독이 2003년에 만든 ‘4인용 식탁’도 있다. 전지현은 여기서 귀신을 보는 여자 ‘연’이란 역을 맡았는데, 역시 죽은 자를 보는 능력이 있는 남자 정원(박신양)에게 4인용 식탁을 가리키며 “애들을 왜 여기서 자게 하나요? 침대에 눕히세요.”라고 말해 사람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약간 멍하면서 백치미가 있는 역할을 그 옛날, 연기 초창기 시절에 해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배우는 연출을 잘 만나야 한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기대하건대 전지현이 ‘잊지 못할 사랑(An Affair To Remember)’같은 영화에서 데보라 카(리메이크판에서는 아네트 베닝) 역할을 하면 제격이겠다. 여자 테리는 남자 니키(캐리 그랜트)를 만나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못쓰게 된다. 수소문 끝에 여자를 찾은 남자를 소파 위에 앉은 채 맞는 여자는 무릎 담요로 다리를 감춘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을 바람맞혔다고 비난하다가 발코니에 놓여 있는 휠체어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책한다. 남자의 자책과 깨달음, 성찰은 종종 여자의 희생과 헌신에서 나온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그렇다. 니키를 사랑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을 버리게 하려는 여자 테리. 그 마음 속의 폭풍을 전지현이 연기하면 잘 하지 않을까. 이 영화 한국에서 리메이크하면 좋지 않을까. 전지현은 사랑 연기를 잘하니까. 당신 마음을 잘 아는 여자니까. 그리하여 만인의 연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