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정부 '10조 차관' 오보에…발칵 뒤집힌 기재부 [관가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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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정부 "오보에 사과" 우리측에 이메일지난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정부는 ‘정부 포털’ 공식 홈페이지에 한국 정부로부터 80억달러(약 10조5000억원)에 달하는 차관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방한한 율리아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제1부총리 겸 경제부장관과 면담하고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협정에 가서명했다.EDCF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산업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개발도상국 정부에 장기·저리로 빌려주는 자금이다. 이른바 개도국 경제원조 기금으로 수출입은행이 기재부에서 위탁 운용한다. 만기는 최대 40년이며, 금리는 연 1%를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양국이 이날 맺은 건 EDCF 차관에 관한 공여협정(A/G)이다. 공여협정은 차관을 해당 정부에 공여할 것이라는 사실 및 일반적 원칙 등을 담은 이른바 ‘가서명 협정’이다. 이 때문에 이날 협정문엔 구체적인 지원 금액이나 지원 조건은 담지 않았다는 것이 기재부 설명이다.
당시 기재부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지난해 인도적 지원 등 1억달러 규모 지원을 제공한 데 이어 올해 2월에는 향후 1억3000만달러(1700억원) 규모의 추가 지원 의지를 발표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번 차관 제공 규모가 1억3000만달러 규모에 달한다고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매우 호의적인 조건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80억 달러를 유치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금액을 직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스비리덴코 부총리 발언을 인용해, 한 달 후 협정이 정식 서명되면 연내 EDCF 차관으로 3억 달러가 지원되고, 내년에는 30억달러의 차관이 제공된다고 발표했다.이어 지원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면 차관의 최대 규모는 80억달러까지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차관이 40년 만기에 연이자 0.15%라는 유리한 조건으로 제공된다는 내용까지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밝힌 EDCF 차관 조건은 우리 정부가 다른 개도국에 지원하는 조건과 거의 차이가 없다. 문제는 지원 금액이다. 기재부가 시사한 1억3000만달러와는 61배가량의 차이가 난다. 우리 정부가 고의로 국내외 시선을 의식해 차관 규모를 축소했다는 의혹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이 보도자료가 일부 국내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면서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주무 부처인 기재부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기재부 개발사업과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보도자료에 담긴 지원 금액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해당 숫자는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1년과 지난해 집행된 EDCF 차관은 각각 1조2267억원, 1조2176억원이다.우크라이나 정부는 한국 정부가 향후 2년간 33억달러(4조34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우리 정부가 최근 2년간 모든 개도국에 집행한 차관 규모(2조4443억원)의 두 배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올 1분기 기준 EDCF 누적 기금 규모는 8조5913억원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우리 정부가 10조원의 차관을 지원한다고 밝혔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EDCF 기금보다도 더 많은 돈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는 것이 된다.
기재부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 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올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지난 주말부터 여러 차례 이메일과 유선을 통해 정정을 요청했다.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도 정정 요청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주말 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지난 23일 한국경제신문의 단독 보도가 나온 후에야 80억 달러라는 차관 최대 규모 및 30억달러(2024년 지원분)라는 숫자를 뺐다.기재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측은 경제부 차관 명의로 우리측에 ‘혼선을 빚어 유감’이라는 내용을 담은 사과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기재부는 지금도 우크라이나 측 보도자료에 연내 EDCF 차관으로 3억 달러가 지원된다는 잘못된 내용이 여전히 남아 있어 추가 정정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기재부가 우크라이나 정부 측이 발표한 잘못된 내용을 일주일가량 방치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시차 등을 감안하면 양측간 소통을 하는 데 부득이하게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