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향의 해피藥] 카페인 사랑은 독인가, 약인가

현대인의 커피 사랑은 지독하다. 상담하다 보면 배우자와는 헤어져도 커피와는 못 헤어진다는 둥, 커피도 못 마시면 무슨 재미로 사냐는 둥, 밥은 안 먹어도 커피 없이는 못 산다는 둥 정말 각양각색의 구구절절한 커피 사랑 고백이 쏟아져 나온다. 집에서, 카페에서, 일터에서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커피는 이제 우리 삶의 일부가 됐다. 그런데 우리는 커피를 언제부터 이렇게 많이 마시게 됐을까? 불과 100년이다. 100년 전 처음으로 ‘가베차’를 마신 고종황제는 100년 뒤 당신의 후손들이 이렇게 커피를 사랑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커피가 이렇게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바로 카페인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커피콩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 기분을 좋게 하고 졸음을 쫓으며 피로를 잊게 해줘서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진화해 왔다. 동물은 불리한 상황이 되면 도망가거나 싸울 수 있지만 식물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보호해야만 한다. 카페인은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알칼로이드, 즉 생존 물질이다. 질소화합물에 불과한 것이다.

"밥은 안 먹어도 커피 없이는 못 산다"

우리 몸에서 알칼로이드를 분해하는 곳은 간이다. 그러다 보니 간이 미성숙한 청소년이 카페인에 노출되면 대사가 빨리 이뤄지지 않아 더 많은 카페인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식후 커피가 소화제라고도 한다. 카페인이 위산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위산이 잘 분비되면 소화가 잘될 수 있지만 위산이 위벽을 자극해 위염을 유발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시원한 소변을 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카페인이 신장세동맥을 확장시켜 신장으로 들어가는 혈액량을 늘려주기 때문이다. 소변이라는 게 혈액을 걸러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신장으로 들어오는 혈액량이 많아지면 소변량은 당연히 늘어난다. 그러나 신장에 혈액량이 많아지면 혈액을 걸러주는 사구체에 가해지는 압력도 커질 것이고 이는 사구체에 부담이 돼 결과적으로 신장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소변량이 많아지면 유속이 빨라지면서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영양소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칼슘,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다. 미네랄의 고갈은 골다공증으로 이어진다.

뇌 속여 피로 잊게 하지만 부작용도

카페인이 꾸벅꾸벅 졸던 사람도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이유는 카페인의 아데노신 차단 작용 때문이다. 우리가 에너지를 많이 써서 에너지 고갈이 오면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이 뇌에 쌓이고 이 아데노신은 우리에게 피로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즉 에너지가 떨어졌으니 쉬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데노신이 붙어야 할 자리에 카페인이 슬그머니 가서 붙어버린다. 이는 카페인과 아데노신의 생긴 모양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뇌가 깜빡 속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아데노신의 신호가 아니라 카페인의 신호를 받고 잠이 확 깨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하던 일에 집중할 수 있다.그러나 인간의 에너지는 한정돼 있다. 쉴 때 쉬지 않고 일하게 되면 세포를 재생하거나 세포를 지킬 에너지는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세포의 노화가 촉진되고 질병에 노출되기 쉬운 조건이 된다. 이런 걸 알면서도 한번 커피와 사랑에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오기가 이다지도 힘든 이유는 뭘까? 그건 바로 카페인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도파민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신경전달 물질인데 도파민이 부족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과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심하면 파킨슨병에 노출되기도 한다. 반대로 도파민에 너무 노출되면 중독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니 120세 장수시대에 유병장수가 아니라 무병장수를 꿈꾼다면 지나친 커피 사랑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커피는 기호식품이지 필수식품이 아니다.

이지향 충남 아산 큰마음약국 대표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