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서 반도체 생산' 압박에 브로드컴 택한 애플

수십억달러 규모 '빅딜'

5G 무선통신용 칩 공급 계약
바이든 정부 '반도체법' 의식
"미국産 부품 쓴다" 강조하기도

일각 "자체개발 난항에 속도조절"
애플이 미국 반도체 회사 브로드컴으로부터 통신용 반도체를 공급받기 위해 수십억달러 규모의 신규 계약을 체결했다. 애플이 반도체 자국 생산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미국 정치권에 호응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브로드컴은 애플의 반도체 생산으로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은 23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브로드컴과 수년간 5세대 이동통신(5G) 무선주파수(RF) 반도체 개발을 위한 수십억달러 규모의 신규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계약 기간과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다. UBS는 2026년까지 150억달러(약 19조8100억원) 이상 규모라고 추정했다.

○동아시아 의존 줄이는 효과

브로드컴은 이번 계약에 따라 아이폰 등 무선 통신 기기에서 송수신 신호를 분리해주는 부품인 FBAR 필터를 포함해 5G 통신용 칩을 개발, 애플에 공급한다. 브로드컴은 콜로라도주 포트콜린스 등 미국 내 주요 제조 및 기술 허브에서 해당 부품을 개발해 생산할 예정이다.

애플은 보도자료 제목에 ‘미국에서 만든 부품(components made in the USA)’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미국 내 투자를 강조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역시 “애플의 모든 제품은 여기 미국에서 개발되고 만들어지는 기술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애플은 미국 내 제조를 활성화하려는 정치권에 호응하기 위해 생산지를 더 중점에 뒀다”고 평가했다. 애플은 오랫동안 제조 시설을 미국에 더 많이 배치하라는 정치적 압력을 받아왔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면서 이 같은 압력은 더 커졌다.미국 정부는 자국의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해 지난해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시켰다. 미국 기업의 과도한 동아시아 공급망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다. 다만 애플의 결정이 미국의 반도체 생산 규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WSJ는 “애플은 공급망을 미국산으로 재편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전 세계 반도체의 약 12%만이 미국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애플 자체 개발 칩 속도 조절?

애플이 이번 브로드컴과의 계약으로 자체 무선 칩 개발과 관련해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인지도 주목된다. 애플은 2019년 인텔의 모뎀칩 사업부를 10억달러에 인수한 뒤 자체 칩 개발에 집중해왔다. 애플은 2020년 11월엔 자체 개발한 첫 반도체 칩 M1을 탑재한 신형 노트북을 공개했고, 지난해 6월 2세대 M2를 탑재한 노트북을 선보였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이르면 2024년 말부터 퀄컴에 의존하던 5G 모뎀 칩을 자체 개발 칩으로 대체하고, 2025년부터는 브로드컴 제품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자체 모뎀 칩 개발에 어려움을 겪으며 브로드컴과 다시 계약을 맺은 것으로 풀이된다. 애플이 자체 칩으로 아이폰을 교체하려면 진출한 175개국의 통신사와 관련 테스트를 해야 하므로 기존 공급사를 이용하는 게 실용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이날 계약 소식이 전해지자 브로드컴 주가는 전날보다 1.2% 오른 686.50달러에 마감했다. 장중에는 698.84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애플은 브로드컴 연간 매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최대 고객이다. 브로드컴은 지난해 애플을 통해 약 70억달러를 벌었다. 반면 애플 주가는 1.52% 하락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브로드컴의 목표가를 725달러에서 800달러로 18% 상향 조정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