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불확실성 시대, 한국의 생존법

가치동맹에만 기댈 수 없는 상황
美·中도 못 넘볼 비교우위 확보를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미·중 기술패권 경쟁 상황에서 반도체산업을 위시한 우리의 기술집약적 산업의 입지가 묘연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은 물론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일본 히로시마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한국 대통령이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9개국의 추가 초청국 정상과 함께 참석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가치동맹에 굳건히 참여하기로 했다.

한국의 실질적인 경제협력 구조와 동북아시아에서의 안보 상황을 고려할 때, 양자택일 형태의 미국과의 결속을 대내외에 천명하면서 중국과 거리를 두는 듯한 행보를 우려하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과의 일방적인 결속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실질적인 전략적 이익을 가져다줄지에 대한 우려 역시 제기된다. 여기에 더해 최근 미국의 부채상환 위기 및 국가부도 가능성 우려까지 커지면서 미국 경제가 우리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하기보다 또 다른 대외 충격의 원인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2024년 예정된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확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예측까지 고려한다면, 최근 조 바이든 정부가 밀어붙이는 서방의 자유민주주의 가치동맹 체제가 얼마나, 어떻게 유지될지도 묘연하다. 바로 이런 미국 내의 구조적 불확실성이 최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더 이상 미국의 추종자가 아니라고 선언하도록 만든 요인들이다.

최근 30여 년 동안 미국 내에서의 정치적 대립과 갈등 구조는 전에 없는 극단적 대립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 결과 부채상한 위기와 국가 부도 우려까지 초래한 미국의 정치적 대립이 가까운 시일 내에 봉합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점차 심해지는 미국 내의 빈부격차와 사회적 갈등 구조, 범죄 증가에 따른 사회적 불안 등을 고려할 때, 미국이 장기적으로 신뢰할 만한 세계 경제 및 정치 구조의 안전판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지 회의가 점차 커지고 있다.

미국 내의 혼란과 난맥상에도 여전히 미국 경제는 세계 경제에서 높은 성장률과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더해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안보동맹의 관계를 고려할 때,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의 심화는 한국 기업에는 전에 없던 도전과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지난 트럼프 정권에서 ‘한·미 간 자유무역정책’은 물론이고 ‘한반도에서의 군사동맹 정책’조차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한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의 전략적 선택지는 더욱 제한돼 있다.

작금의 미국은 극한적인 정치 대립을 조정할 능력을 점차 상실해 부채상한 위기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면서 세계 경제에 또다시 위기를 키워왔다. 대립 국면에서 트럼프가 당선될 확률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미국이 세계 경제 및 체제 안정의 안전판으로 작동하기에는 이미 미국 내의 구조적 불안정이 임계 수준을 넘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단기적인 우리나라의 산업 및 경제의 안정적 성장 기반은 물론 중장기적인 한반도의 안정 및 안보를 위한 장치를 결국 우리 스스로가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 출발점은 중국도 미국도 모방할 수 없는 우리 고유의 비교우위 부문을 확보하는 노력이다. 기술적 비교우위 부문을 확보하지 못한 경제와 국가가 장기적인 생존 기반을 확보한 역사적 전례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