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위드인] 엔씨 김택진의 야심작 'TL'…글로벌 공략 성공할까

이달 베타테스트 진행…확률형 아이템 위주 BM서 탈피 노력 돋보여
약 10년 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작된 모바일 게임 시대는 전통적인 PC 기반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팬들에게 여러모로 암울한 시기였다. 오랜 시간 플레이를 요구하는 진중한 게임 대신 틈틈이 즐길 수 있는 가벼운 게임이 대세가 되면서 MMORPG의 모습도 변했기 때문이다.

PC 기반 '리니지' 시리즈의 성공을 기반으로 성장한 엔씨소프트는 이런 변화를 발 빠르게 캐치해 모바일 게임 '리니지M'(2017)·'리니지2M'(2019)·'리니지W'(2021) 3부작을 출시했다.

플레이어가 명령만 하면 알아서 싸우는 자동 플레이 위주의 단순한 조작감과 돈을 쓰면 쓸수록 캐릭터가 강해지는 '페이 투 윈'(Pay to Win) 수익모델(BM)의 조합은 엔씨소프트뿐만 아니라 많은 국내 게임사가 따라서 하는 '성공 공식'이 됐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20대·30대 젊은 게이머들이 한국 게임시장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았다.

해외 유수의 대작 PC·콘솔 게임사들이 한국 시장을 겨냥한 마케팅을 늘리며 게이머의 눈은 한껏 높아졌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소수의 고액 결제 이용자에게 '바늘구멍' 확률의 뽑기 아이템을 파는 모바일 게임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엔씨소프트가 연내 출시하는 신작 '쓰론 앤 리버티'(TL)는 모바일이 아닌 PC·콘솔 중심의 MMORPG다. 지난해까지 든든한 '캐시카우'였던 리니지 시리즈의 매출이 점차 하락세를 보이면서 엔씨소프트는 가장 먼저 나올 차기작 게임인 TL의 성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창업자인 김택진 대표가 TL의 오프닝에 '선임 총괄 프로듀서' 명의로 가장 처음 소개되는 점 역시 TL에 거는 기대감을 보여준다.

엔씨소프트는 외부에 게임의 콘텐츠를 알리고 이용자 피드백을 수렴하고자 지난 25일부터 TL 베타테스트에 돌입했다.
◇ '페이투윈' BM 탈피한 풍부한 콘텐츠
27일 체험해 본 TL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페이투윈'에서 거리가 먼 BM이었다.

엔씨소프트가 기존에 선보인 모바일 MMORPG 게임에서 캐릭터의 스펙을 올리려면 '변신'이나 '마법인형' 같은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이 사실상 필수였다.

TL에도 변신이 있고 마법인형에 해당하는 '아미토이'가 있다.

하지만 변신이나 아미토이를 유료 아이템 뽑기로 뽑는 방식은 아니었고, 게임 속 여러 퀘스트와 수집 요소 모음집인 '코덱스'를 완수하거나 각종 이벤트에 참가하면 보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

또 등급이 높은 변신·아미토이 역시 비전투 상황에서의 이동과 희귀 재료 획득 확률에 영향을 줄 뿐, 캐릭터의 성능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캐시샵에서는 플레이 진척도에 따라 보상을 주는 배틀패스 상품인 '시즌 패스'와 '성장 일지 패스' 2종을 구매할 수 있었는데, 게임플레이에 도움을 주는 여러 아이템을 주기 때문에 사실상 구매가 필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거래소에서 쓸 수 있는 유료 화폐 '루센트'와 치장용 아이템 구매에 쓰는 '꾸밈 주화'를 충전할 수 있었다.

콘텐츠도 여러 이용자가 어우러지는 MMORPG 장르의 특색을 십분 살렸다.

초반 지역인 '검은 울음 평원'에서 체험한 '늑대 사냥 대회'는 맵 곳곳의 늑대를 잡아 늑대 꼬리를 납품하면 보상을 주는 이벤트인데, 길드 단위로 순위를 집계하는 데다 다른 이용자가 모은 늑대 꼬리를 강탈하는 게 가능해 자연스럽게 이용자 간 협동과 경쟁을 유도한다.

또 광활한 맵 곳곳에는 게임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여러 책과 편지가 뿌려져 있고, 이를 모으면 보상을 주기 때문에 탐험의 즐거움도 살렸다.

그래픽도 전 세계를 통틀어 동종 장르 최고 수준으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낮·밤과 날씨에 따른 광원의 변화, 섬세한 건축물과 자연환경의 모습은 눈을 즐겁게 했다.
◇ 새로운 시도 속에서 보이는 '모바일 리니지'의 흔적들
하지만 개발 초창기 '리니지' 시리즈 후속작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의 특성상 리니지류 MMORPG의 단점을 완벽히 극복하지 못한 점은 호불호가 갈릴 전망이다.

타게팅 기반 MMORPG라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게임 속 전투의 양상은 '스텔라포스' 라는 이름의 자동전투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지극히 단조롭다.

스킬을 타이밍에 맞게 사용해 적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는 요소가 있지만, 판정이 지나치게 여유롭고 강력한 몇몇 공격을 빼면 비효율적이라 구색 갖추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스킬의 종류도 7종의 무기당 액티브 스킬 7개, 패시브 스킬 6개로 가짓수가 많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교한 조작이 어려운 모바일 기기의 특성을 고려해 만들어진 자동전투 시스템을 굳이 PC·콘솔 중심의 TL에 넣고 게임을 설계한 것은 콘텐츠 소모 속도 때문으로 보인다.

TL의 레벨 디자인은 퀘스트만 따라가면 되는 초반 구간을 벗어나면 한동안 반복적인 필드 사냥을 통해 레벨을 올리게끔 설계돼 있는데,
지금 장비하고 있는 아이템과 가방에 넣은 아이템이 혼재된 리니지식 인벤토리 사용자환경(UI)도 '이게 최선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아이템을 장비하면 인벤토리에서 사라진 뒤 별도의 장비 창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UI 설계기 때문이다.

변신을 통한 비행 시스템 역시 완성도는 높지만, 활용성은 다소 떨어진다.

고도를 높일 수는 있으나 얼마 가지 않아 스태미나 게이지가 바닥나기 때문에 사실상 활강 시스템에 가까웠다.

조작감은 위메이드가 이달 출시한 '나이트 크로우'와 비슷하다.
◇ 엔씨 '숙원사업' 북미·유럽 시장 공략 성공할 수 있을까
엔씨소프트에게 북미·유럽 시장에서의 성공은 오랫동안 숙원 사업이었다.

물론 북미 자회사 아레나넷이 2012년 출시한 '길드워2'가 여전히 순항하고 있지만, 엔씨소프트 본사에서 제작한 게임들의 서구권 시장 성적은 대체로 신통찮았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의 올해 1분기 지역별 매출 구성만 봐도 전체 매출액 4천788억원 중 국내 매출은 63%,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은 20%였고 북미·유럽 시장은 7%에 불과했다.

그간 게임을 대부분 직접 퍼블리싱해온 엔씨소프트는 TL의 북미·유럽·일본 시장 배급 권한을 아마존게임즈에게 넘겼다.

한국 MMORPG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 상황에서, 글로벌 게임사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게임 이용자층이 두텁고 소비력이 높은 서구권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혁신적인 요소를 담아내려고 노력했지만, 한계점도 여실히 보여준 TL이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는 베타테스트 이후의 '담금질'에 달려 있을 전망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