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아, 춘향아, 우리 커피한잔 할까

[arte]이자람의 소리
내가 배운 판소리 <심청가>와 <춘향가> 창본에서 심청이 나이는 십오 세, 춘향이 나이는 십육 세다. 십오 세와 십육 세라…. 내가 그 나이에 무슨 생각을 했었더라? 중학교 2학년과 3학년. 교복 입고 학교 다니며 주머니에 치즈 버거 하나 소중하게 넣어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팝송을 듣던 시절이다.

운이 좋아 양 부모 가정에서 부모님의 돈과 노동으로 차려진 밥을 아침저녁으로 먹으며 친구 관계, 시험 성적 등의 고민을 인생 최대의 고민으로 끌어안고 살던 시기이다. 아마 지금 대한민국의 십오 세, 십육 세라면 대부분이 부모 혹은 부모를 대신할 만한 윗 세대 어른의 보호를 받으며 국영수를 중심으로 한 학문의 의무 교육을 받으러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아이돌 문화를 소비하고 동경하며 유튜브 채널을 공유할 것이다. 조선시대의 십오 세, 십육 세인 춘향이와 심청이는 무슨 교육을 받고, 무슨 생각과 고민을 했을까?

여성인 그들을 자극하고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들은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게 했을까?

심청이는 아홉 살이 되는 해에 아버지에게 ‘순우의 딸 제영의 일화’나 ‘까마귀의 반포은’을 예로 들며 자신이 아빠에게 효를 다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무시무시한 어린이다. 배운 대로 착실히 행하는 모범생의 피가 흘렀다 치더라도, 자신이 읽은 고서의 내용을 응용해 어른(자신의 아빠)을 설득하고 그 결과로 매일같이 바가지를 들고 아빠와 자신이 먹을 밥을 얻으러 돌아다니는 심청의 행동은, 아무리 조선시대라 하더라도 실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아마도 이토록 커다란 그릇의 어린이의 효성을 바라는 누군가가 현실에서 불가능한, 극한으로 치달은 서사를 허구로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당장 주변에 있는 아홉 살의 하루를 관찰해 보면 더욱 타당한 짐작일 것이다. 아홉살 아이가 알아서 매일 등하교를 해주다니 참으로 기특해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놓고 얘가 밥 한 그릇 싹 비우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식사를 기다려주는 부모가 태반이다.

아홉 살이, 자신의 밥을 알아서 챙겨 먹는 것을 넘어서 부모의 밥상을 걱정하며 그것을 홀로 해결하려 거리로 나서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한 부모 가정의 아이들, 한 끼 한 끼를 매번 해결해야 하는 빈곤층의 아이들은 사실 우리가, 이 사회가, 국가가 마땅히 돌봐야 하지, 그들이 밥그릇을 들고 이웃집을 다니며 십시일반을 모으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조선시대가 전쟁 상황도 아닌데, 이 시절은 이것이 흔한 일이었을까.

춘향이는 엄마 월매가 자신이 못다 이룬 ‘계급’의 욕망으로 키워낸 딸이다. 나라의 재상인 아버지와 기생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계급 혼혈 춘향이는, 십 대 때 이미 기원전 3세기 제나라의 왕촉이 울부짖은 ‘충신불사이군 열녀 불경이부절’을 자신의 철학으로 가진 무시무시한 청소년이다.온 마을 사람들이 이 똑똑하고 도도하고 아름다운 아이를 자랑거리로 삼았다. 이러한 춘향이는 날 좋은 봄날 그네 타러 나갔다가 자신에게 찾아온 방자가 가리킨 손 끝에 서 있는 이몽룡을 보고 짐짓 마음에 들어 그의 청을 수락한다. 그리고 몽룡을 자신의 방으로 초대하여 고사 성어로 문답하며 이몽룡의 태도를 살피는 영리한 친구다.

춘향은 분명 1990년대의 중학생인 나보다 훨씬 진취적이고 명확한 친구이다. 나의 성장을 도모할 애인은 내가 고르며, 나의 지식과 그의 지식을 견주어 일종의 오디션을 통해 만남을 결정하는 춘향의 태도는 대한민국 수많은 여성 학생들이 가졌으면 하는 모습이다. 아무도 얼떨결에 애인에게 주도권을 넘겨줘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는데 한발씩 늦지 말았으면 한다.

심청이는 자신의 의지로 ‘효’의 철학을 지키며 극단적인 선택을 마다하지 않으며, 춘향이 또한 자신의 의지로 ‘의리’를 선택하며 목숨을 건다. 이 이야기를 빚어낸 이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바라는 자식의 상으로서 부모를 위해 목숨도 버릴 만큼의 효성을 심청이의 인당수 사건과 그를 통한 권선징악으로 만들었을 것이며,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바라는 여성상으로 권력에조차 굴하지 않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춘향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들을 이렇게까지 극한으로 몰아세우는 그 시절 사회의 통념에 반대한다. 이를테면, 부모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행위가 성립 가능한, 어린 여성을 제물로 바친다는 끔찍한 문화 라거나 난데없이 남원의 부사로 내려온 권력자가 자신과 잠자리를 하자고 몰아붙일 수 있는 폭력은 현대사회에서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이 시대착오적인 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정확하게 관철하고 행동하는 심청이와 춘향이는 놀라울 만큼 진취적인 친구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시대의 많은 소리꾼들이 여전히 이 고리타분한 시절의 고전을 이어받았을 것이고 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소리꾼의 해석의 변화를 겪으며 후대로 전해지겠지.

<심청가>나 <춘향가>를 들고 무대에 서게 될 때는 항상 심청이나 춘향이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는 기분으로 작품을 준비한다. 그들이 못다 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지금 시대의 관객들에게 전하는 가교 역할을 기꺼이 해내는 것. 이미 고정되어 있는 이야기 틀 안에서도 어떻게 하면 최대한 그들의 입장을,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이야기를 대하고 그를 관객에게 전해줄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것. 그것이 지금 시대의 전통 판소리꾼인 내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