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호의 저작권 세상] "누구나 자유롭게 써라"…'저작권 기증' 확산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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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입문자에 저작권은 높은 벽“내 저작물을 누구나 자유롭게 쓰도록 하고 싶다.” “이 저작물에서 생기는 수익 전체를 사회에 환원하겠다.” “이 음악으로 수익 창출을 하지 않겠다.”
기꺼이 어깨 내어준 이들에 감사를
이일호 연세대 법학연구원 연구교수
TV 예능 프로그램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저작권의 보호 기간은 저작자 생존 기간에 더해 사후 70년까지인데, 여기서 나올 잠재적 수익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결정이다. 이런 결단을 내린 저작자는 재능기부 이상으로 우리의 문화 발전에 공헌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작자가 위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해서 저작물을 이용하는 모든 행위가 허락된다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저작물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말뜻은 사용료는 받겠지만 이를 본인이 지정한 단체나 개인에 기부하겠다는 의미일 수 있다. 또 수익 창출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누구나 해당 저작물을 이용해도 좋다는 의미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저작자는 자기 뜻을 돌이킬 수 있다. 처음에는 돈을 벌 생각이 없었지만, 인기가 늘거나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과거의 뜻을 거둘 수 있다. 또 저작자의 생각이 생전에 바뀌지 않았더라도 그의 유족이 뜻을 바꿀 수도 있다. 저작자 의지에 따라 또는 저작권을 사들인 사람 의지에 따라 저작물의 이용 방법과 조건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유튜브와 같은 영상 플랫폼에는 수없이 많은 영상이 올라오고, 영상에는 수많은 저작물이 이용된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배경음악, 아이콘, 이미지 등을 스스로 창작할 수 없다면, 이들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이용해야 한다.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크리에이터라면 당연히 이런 플랫폼을 이용하거나 저작자에게 연락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단지 생각을 공유하고 싶은 이들, 또는 영상 만들기에 입문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는 큰 걸림돌이다.
다행히도 우리 저작권법은 저작권을 ‘기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저작권의 기증이란 국가에 저작물을 기증하고, 국가가 해당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무엇이 기증됐는지에 관한 정보는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공유마당’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작권을 기증한 사람은 임의로 기증 의사를 철회할 수 없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긴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나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이렇게 기증된 저작물은 기증자가 특별히 조건을 정하지 않은 한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저작권 기증은 갈 길이 멀다. 제도가 시행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현재까지 기증된 저작물 수는 많지 않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한 뉴턴의 말을 생각하며, 우리가 더 풍요로운 문화유산을 누리도록 기꺼이 어깨를 내어준 사람들과 공동체에 공경과 감사를 표해 보면 어떨까? 본인이 만든 저작물을 기증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실천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