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의욕 안 보이는 국민의힘…공무원들 "여당 다루기 편해져"

존재감 작아진 여당

어쩌다 정책안 내놓더라도
부처서 거부하면 바로 물러나
당내선 "책임보다 지위에 안주"
“정권이 교체되고 1년이 지나면서 ‘여당이 편해졌다’는 이야기가 공무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옵니다.”

한 중앙부처에서 국회 업무를 담당하는 과장급 공무원은 최근 이 같은 관가 분위기를 전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보다 현 여당인 국민의힘을 다루기가 더 쉽다는 의미다. 당 전반에 ‘무엇을 이루겠다’는 목표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개별 의원의 역량과 의욕도 민주당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하고 싶은 게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니 여당 의원들이 지역구에서 조기 축구나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이 국힘보다 여당 잘했다”

관가에서는 윤석열 정부 들어 정부를 견인하는 여당의 역할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정철학을 바탕으로 당이 제시해 이끄는 아젠다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어쩌다 내놓은 정책안도 부처에서 “안 된다”고 하면 의원들이 별다른 의견을 제기하지 않고 물러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정부의 민주당과 대비된다. 실패로 결론 난 소득주도 성장, 임대차 3법 등 중요 정책을 여당이 앞장서 제기하며 정부의 반대를 눌렀다. 시민단체와 노조 내 연구조직까지 동원해 정부에 대항할 논리를 마련하고, 동남아시아와 남미를 뒤져서라도 선례를 찾아냈다.

정책을 여론화하기 위한 원외 활동도 민주당이 훨씬 적극적이었다는 것이 중앙부처 관계자들의 평가다. 한 국장급 공무원은 “민주당은 여당 시절 각종 이익단체를 동원해 별별 설명회와 간담회를 다 열었다”며 “그때마다 불려 다니느라 힘들었지만, 지금 여당과 비교하면 비전과 실행 능력이 월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능력도, 의지도 부족한 의원들

국민의힘 내에서는 의원들부터 여당으로서의 책임보다 지위에 안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정권교체를 이루자마자 당 전반이 복지부동하고 지도부 눈치나 보는 예전 모습으로 회귀했다”고 토로했다.

의원 전반의 의욕 및 능력 저하도 심각한 수준이다. 최근 한 경제부처는 입법예고한 주요 정책 중 하나를 철회했다. 담당 상임위원회 여당 의원이 “해당 정책을 내 이름의 법안으로 내려고 하니 입법예고한 정부 안은 철회해달라”고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쉽게 입법 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부가 만들어 입법예고까지 한 법안에 숟가락만 올린 셈이다.

당내에는 해외 인사가 방문했을 때 응대할 만큼 영어를 구사하는 의원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여당 한 관계자는 “박진 외교부 장관과 조태용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차출되면서 영어 구사가 자유로운 의원은 북한 외교관 출신인 태영호 의원밖에 남지 않았다”며 “당내에 인재가 넘치던 17·18대 국회 등과 비교해 의원들의 역량이 크게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총선에 불리하게 작용

의원 역량 저하는 각종 현안에 대해 여당을 더 수세적으로 만든다. 미래 비전이나 아젠다를 제시하기보다 야당이 제안하는 각종 정책을 비판하고, 방어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는 내년 총선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비전으로 뭉쳤는데, 이후에는 목표가 사라졌다”며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도 있어야 유권자가 표를 줄 텐데 지금 여당에선 그런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일부 의원은 근본적인 원인을 대통령실의 문제로 돌린다. 한 초선 의원은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조금 앞서 나간 정책을 내놨다 망신당하고 사과까지 하지 않았느냐”며 “대통령실이 모든 권한을 쥐면서 여당과 여당 의원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경목/고재연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