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 또 무효 판결…"근로자 동의 받아도 위법"
입력
수정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또 나왔다.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았어도, '근로자 회의' 방식을 거치지 않았다면 무효라는 판단이다. 법원이 임금피크제 도입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입장을 보이면서, 과거 도입됐던 임금피크제들이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지방법원 제14민사부(부장 김정일)는 지난 4월 경북 지역 한 협동조합을 퇴직한 근로자 5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이 협동조합은 2015년 농협중앙회의 지도에 따라 노사협의회를 거쳐 취업규칙을 개정하고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57세부터 임금이 70%로 감액된 이후, 58세 65%, 59세 60%, 60세 55% 수준으로 줄어드는 내용이다.
이에 정년퇴직 근로자 5명은 해당 임금피크제가 고령자를 이유 없이 차별해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데다 제대로 된 근로자 동의 절차를 밟지 않았다며 1인당 2400만원에서 최대 6400만원의 임금 차액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임금 증가 총액이 50% 증액에 불과한데, 2년간 더 근로한 것에 대한 대가가 연봉의 200%가 아닌 50%에 불과하니 이것을 임금이 늘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원은 직원 과반수의 동의서 제출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동의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회신 된 동의서는 대부분 공문 발송 다음 날에 제출됐다"며 "근로자들이 모여 토론이나 의견 교환을 가질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또 근로자들이 종이 한장에 개별적으로 서명해 의사를 취합하는 동의서의 형식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누가 동의하고 누가 동의하지 않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상급자가 먼저 동의서에 서명할 경우 자칫 근로자들의 의견 교환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입 과정에서 노사협의회 협의·의결을 거쳤다는 회사 측의 주장에도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들이 근로자들의 의사표시를 대리할 권리를 위임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2016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으로 정년이 연장 되면서 이 회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이 적지 않아, 소송이 확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가 있었음에도, '회의 방식'을 거쳤는지에 대한 입증 책임을 회사에 넘겨 버렸다"며 "임금피크제의 절차적 요건을 까다롭게 해석하면서 추후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분쟁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성/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대구지방법원 제14민사부(부장 김정일)는 지난 4월 경북 지역 한 협동조합을 퇴직한 근로자 5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하고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이 협동조합은 2015년 농협중앙회의 지도에 따라 노사협의회를 거쳐 취업규칙을 개정하고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57세부터 임금이 70%로 감액된 이후, 58세 65%, 59세 60%, 60세 55% 수준으로 줄어드는 내용이다.
이에 정년퇴직 근로자 5명은 해당 임금피크제가 고령자를 이유 없이 차별해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데다 제대로 된 근로자 동의 절차를 밟지 않았다며 1인당 2400만원에서 최대 6400만원의 임금 차액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임금 총액 늘어도 근로자에 불리"
조합 측은 먼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해당하며, 은퇴 시까지 총수령액은 늘었다"며 근로자에게 불이익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된 57~60세 사이에 받는 연봉 총액을 합산하면 기존 연봉의 250%이므로,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58세까지 받았을 200%에 비해 연봉 총액이 늘었으므로 불이익하게 변경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하지만 법원은 조합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재판부는 먼저 "정년 연장과 상관없는 57세와 58세에도 임금이 감액된다"며 "2년간을 같은 일을 하면서 더 근로해도 증가 임금 총액은 50%에 불과하다"고 꼬집고 임금피크제가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임금 증가 총액이 50% 증액에 불과한데, 2년간 더 근로한 것에 대한 대가가 연봉의 200%가 아닌 50%에 불과하니 이것을 임금이 늘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직원 과반수 동의받았어도 '위법'
회사 측은 불이익한 변경이라고 해도 노사협의회를 거쳐 사업장별로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를 받았으므로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2015년 12월, 26개 개별 사업장에 공문을 보내 "근로자들의 동의 의사를 취합하라"고 지시해 근로자 총 379명 중 원고들을 포함한 265명의 동의를 받은 상황이다.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려면 회사에 과반수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그 노조,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해당 회사는 무노조 사업장이다. 대법원은 '근로자들 사이의 의견 교환'을 거쳐 찬반 의사를 취합하는 방식도 허용하고 있다.하지만 법원은 직원 과반수의 동의서 제출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동의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회신 된 동의서는 대부분 공문 발송 다음 날에 제출됐다"며 "근로자들이 모여 토론이나 의견 교환을 가질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또 근로자들이 종이 한장에 개별적으로 서명해 의사를 취합하는 동의서의 형식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누가 동의하고 누가 동의하지 않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상급자가 먼저 동의서에 서명할 경우 자칫 근로자들의 의견 교환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입 과정에서 노사협의회 협의·의결을 거쳤다는 회사 측의 주장에도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들이 근로자들의 의사표시를 대리할 권리를 위임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2016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으로 정년이 연장 되면서 이 회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이 적지 않아, 소송이 확산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과반수 근로자의 동의가 있었음에도, '회의 방식'을 거쳤는지에 대한 입증 책임을 회사에 넘겨 버렸다"며 "임금피크제의 절차적 요건을 까다롭게 해석하면서 추후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분쟁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성/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