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인정 땐 10년치 임금 내줘야하나

한경 CHO Insight
전통적인 생산의 3요소는 노동, 토지, 자본으로 기술혁신 또는 산업분야에 따라 각 요소의 경중 및 조달방법이 달라질 수는 있으나, 위 3요소는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기업은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각종 규제를 고려하여 전략적으로 3요소를 마련하고 있다. 토지를 포함한 부동산은 매매 또는 임차를 통하여, 자본은 대주주가 가진 자금에 더하여 공모를 통하여 투자를 받거나 차입을 통하여 마련하고 있으며, 노동을 제공하는 인력의 수급 방안으로는 직접 고용하는 경우, 다른 기업으로부터 어느 정도 검증된 인력을 파견 받아 사용하는 경우, 업무 자체를 다른 기업에 맡기는 경우 등이 있다.

한편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분업이 더욱 확대되고, 분업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분업 대상 업무의 외주로 이어진다. 즉, 업무 자체를 다른 기업에 맡기는 것이다. 기업은 모든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보다 분업 대상 업무를 다른 기업에 맡김으로써 더 적은 비용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특히 영위하고 있는 사업분야와 무관한 업무, 사업분야에 관한 것이라도 더 전문화된 지식과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한 업무는 그와 같은 능력을 갖춘 다른 기업에 맡기고, 본연의 사업에 집중함으로써 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생산(또는 고객에게 더 높은 수준의 용역을 제공)할 수 있으므로, 이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도급·파견의 경계와 파견법상 강행규정

이처럼 다른 기업에 업무를 맡기면 그에 해당하는 업무는 수급인이 처리하게 되므로 해당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인력 수급의 주체도 수급인이 되고, 도급인은 인건비 대신 도급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다. 도급인은 수급인과 도급계약을 체결하였을 뿐 수급인의 근로자와는 아무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급인이 수급인에게 업무를 맡기는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 달라는 요청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요청이 자칫 파견법상의 규제와 맞물려 분쟁을 야기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는 수급인의 근로자가 도급인을 상대로 파견법을 근거로 직접고용 및 임금차액을 청구하는 형태로 발생하는데, 이는 도급인과 수급인이 파견이 아닌 도급계약을 체결하였더라도 대법원은 도급인이 수급인의 근로자에게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수급인의 근로자가 도급인의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도급인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는지, 수급인이 근로자 선발,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 사용자로서의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그 법률관계가 근로자파견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고, 파견법은 파견근로자 사용시 파견법에서 정한 바에 따르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파견을 받는 주체로 하여금 해당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분업 대상 업무의 외주를 위하여 수급인과 도급계약을 체결하였더라도 대법원 판례의 판단기준에 부합하는 현상(現狀)에 기초하여 파견관계로 인정될 수 있고, 파견관계로 인정되면 파견법이 적용되므로, 파견법에 따라 도급인(사용사업주)이 수급인(파견사업주)의 근로자에 대한 직접고용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

◆파견관계 인정에 따른 임금차액 청구 문제

최근 대법원은 원고가 삼표시멘트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차액 지급을 청구한 사안에서, 임금채권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는 피고의 항변을 배척하고, 파견법 제21조 위반에 따른 민법 제766조 제1항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간을 적용한 원심판단을 그대로 확정한 바 있다. 원심의 구체적 타당성이 어느정도 반영된 결과일 수 있지만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될 경우 그에 따른 임금 차액 상당의 지급청구권은 파견법 제21조 위반에 기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권에 해당하고, 민법 제766조에 따라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임금체불이 근로기준법상 강행규정을 위반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은 분명하고, 특히 임금을 체불한 사용자는 근로자와 체결한 근로계약상의 명시적인 의무를 위반하였다는 점, 임금체불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는 기본적인 생활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불법의 정도를 매우 중하게 평가하여야 하며, 형사적인 관점에서도 그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큼에도 체불된 임금의 청구기한은 임금채권으로서 소멸시효 3년이 적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위와 같은 대법원의 판단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더욱이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에서 수급인의 근로자가 도급인의 근로자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면 이는 상대적으로 고의성이 짙은 불법행위에 따라 부당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므로 개선해야 할 대상이 분명하나, 파견법이 시행된 지 사반세기에 이른 현시점에서 그와 같은 모습은 거의 없고, 막상 현장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불법파견에 대한 기업의 고의 또는 과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례도 목격된다. 과거에는 이른바 불법파견 사건이 제조업에 국한된 문제로서 생산업무를 직접 담당하는 근로자에 한정된 문제인 것처럼 보였으나, 최근 분쟁의 양상을 보면 분쟁이 일어나는 분야 및 업무가 다양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위 판결이 향후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동종·유사성에 관한 판단의 중요성

이처럼 도급인과 수급인 각각의 근로자들이 서로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는 파견관계의 인정을 너머 각각의 근로자가 수행하고 있는 업무를 파견법상의 동종·유사업무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오히려 더 중요한 쟁점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현행 파견법도 사용사업주가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할 때,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있는 경우, 해당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에 따르도록 하고 있고,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가 없는 경우, 해당 파견근로자의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낮아져서는 아니 될 것이라고 정하고 있으며, 파견근로자라는 이유로 사용사업주의 사업 내의 같은 종류의 업무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에 비하여 파견근로자에게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정함으로써 동종·유사업무 종사자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다르게 처우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한다는 법적 정의의 개념에 기초한 타당한 내용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판례는 취업규칙이나 근로계약 등에 명시된 업무 내용이 아니라 근로자가 실제 수행하여 온 업무를 기준으로 판단하되, 이들이 수행하는 업무가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 아니하고 업무의 범위나 책임ㆍ권한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주된 업무의 내용에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들은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관건은 ‘주된 업무의 내용에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하는지 여부’인데 동종·유사성은 파견관계 인정에 따라 직접 고용대상이 된 인력에 대한 합당한 처우에 관한 문제이면서 동시에 기업의 부담에 관한 문제이며, 나아가 도급인의 근로자 또는 동일한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다른 수급인의 근로자와의 형평에 관한 문제라는 점까지 고려하여 더욱 정교한 판단이 요구된다.

조홍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