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오르는 길이 하나가 아니듯

[arte]이현식의 클래식 환자의 병상일지
휴일에 기온 적당하고 미세먼지 없으면 가끔 산에 간다. 집에서 오가는데 오래 걸리지 않아서 관악산을 선호한다.

연주대에 오르면 흰 축구공 모양의 기상 관측 레이더가 있다. 한강 건너에서도 보일만큼 유명한 지형지물이다. 그 앞에서 ‘하드’라 불러야 제맛인 아이스크림과 각종 음료수를 판다. 메로나 하나 사서 입에 물고 서울시내와 과천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맛이 꿀맛이다.그렇다고 꼭 연주대까지 올라야만 하는 건 아니다. 악(岳)자 붙은 산 답게 제법 가파르니, 평소 운동 않던 사람에겐 좀 버거울 수도 있다. 일정상 시간이 좀 부족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능선 중간 적당한 곳까지 올라서 경치 감상하고 내려오는 것도 충분히 의미있는 휴일 등산이라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은데 뭐부터 들어야 하냐”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 가끔 이 관악산 등산 얘기를 꺼낸다. 내 경우엔 사당역에서 관음사를 거쳐 관악능선으로 오르지만 서울대나 낙성대에서 오를 수도 있고 과천에서 오르는 사람도 많다. 꼭 정상인 연주대까지 가서 메로나 사먹지 않아도 그만이다.

클래식도 그렇다. 음악의 아버지가 바흐, 어머니가 헨델이라니 그것부터 들어야 한다든가, 교향곡의 아버지가 하이든이라 하니 베토벤에 앞서 하이든부터 들어야 한다든가, 모차르트가 제일 천재라 하니 모차르트부터 들어야 한다든가, 그런 법은 없다. 피아노부터 듣거나 성악부터 들어야 한다고 교과서에 적혀있는 것도 아니다. 기회 닿는대로, 접하게 되는 대로 듣기 시작해 거기서부터 확장해 나가면 된다. 클래식음악 청취 자격시험 봐서 붙어야 되는 것도 아닌데, 공부해가며 들어야 한다는 부담감 가질 필요 없다.클래식 음악을 안 듣던 사람이 클래식을 만나게 되는 가장 쉬운 접점은 매체가 아닐까 싶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 광고에 쓰인 클래식 음악은 영상과 함께 강한 정서적 자극을 줌으로써 듣는 이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를테면, 클래식의 'ㅋ'도 관심 없던 누군가가 영화 <헤어질 결심>을 통해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를 접하고, 그 아름답고 절절한 선율에 매혹되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는 그 곡을 출발점으로 삼아 클래식 음악을 탐색해 나갈 수 있다. 말러는 클래식 음악의 작곡가들을 시대순으로 줄세웠을 때 거의 현대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별 상관 없다. 재즈나 록, 팝, 댄스음악, 트롯 등 대중음악을 들을 때도 시대순으로 찾아듣지 않는 것과 같다.

아무리 명산이라도 쳐다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일단은 동네 뒷산 둘레길이라도 나서보는 것이 중요하듯, 음악 듣는 것도 그렇다. 무슨 곡부터 들어야 하냐 뭐가 유명한 연주냐 따질 것 없다. FM라디오(93.1Mhz에서 좋은 클래식 하루종일 틀어준다)나 유튜브, 또는 각자 편한 음악 스트리밍 앱을 열어서 뭐라도 들어보자. 클래식 입문용 책도 요즘은 좋은 게 너무나 많다. 시작이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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