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7월 조기 총선…산체스 총리 '최후의 도박'

야당이 광역 지방자치단체장 상당수 탈환

분리주의 세력 옹호, 비동의 강간죄 도입 과정 혼란 등 패배 빌미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지방선거 패배를 인정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했다. 집권당인 중도좌파 사회노동당(PSOE)과 제1야당인 중도우파 국민당(PP)의 경쟁뿐만 아니라 각각 다수당과 연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극좌 정당 유니다스 포데모스와 극우 복스(Vox) 연합의 다툼이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29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산체스 총리는 당초 12월로 예정된 의원 총선거까지 연정을 유지하기로 했던 방침을 바꿔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열린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사회당이 제1야당인 중도우파 국민당과 극우 야당 복스 연합에게 대패했기 때문이다. 산체스 총리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민들의 뜻에 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사회당은 이번 선거에서 광역 자치단체 12곳 중 9곳에서 패배했다. 이번 선거는 전국 17개 자치주 중 12곳에서 8131개 시·군 단체장, 지방의원, 광역 단체장 등을 뽑기 위한 것이었다. 마드리드 주에선 국민당 강경파 지도자인 이사벨 디아즈 아유소 현 주지사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1위에 올랐다. 같은 당 호세 루이스 마르티네스 알메이다 마드리드 시장도 재선에 성공했다. 여당은 마드리드 뿐만 아니라 발렌시아, 아라곤, 발레아레스 제도와 남서부 거점인 엑스트레마두라, 발렌시아와 세비야 시 등 주요 거점을 잃었다.

산체스 총리가 이끄는 스페인 사회당은 2009년 금융위기 때 국민당에 정권을 내준 뒤 2018년 소수당 처지에서 국민당의 부패 혐의를 이슈로 의회불신임 투표를 통해 집권, 2019년 총선서 승리했으나 과반을 넘지 못해 극단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와 연정을 이뤘다. 선거에서 사회당은 28.2%에 그쳤으며 연정 파트너인 좌파 유니다스 포데모스 당은 참패했다. 야당 연합은 31.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산체스 총리가 카탈로니아와 바스크 지역 분리주의자들에 친화적인 정책을 편다는 비판 때문에 보수 지지층과 중도층이 등을 돌린 것으로 외신들은 분석하고 있다. 작년 10월엔 명백한 동의 없는 성관계는 폭행과 협박이 없어도 성폭행으로 처벌하는 ‘비동의 간음죄’ 도입 과정의 허점으로 전국적인 반발을 일으켰고, 산체스 총리가 대국민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 법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성적 학대’와 ‘성폭행’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법으로 처벌하는 바람에 미성년자 약취 유인과, 심신상실 상태에서 벌어진 준강간 등 명백한 폭력이 아닌 경우 형량이 대폭 낮아졌다. 스페인 정부 통계에 따르면 최소 성범죄자 104명이 석방되고 978명이 형량을 줄였다.산체스 총리의 조기 총선 시도는 야권이 전열을 정비하기 전에 조기 총선을 실시해 정국을 안정시키겠다는 승부수로 해석된다. 산체스 총리는 야당이 반(反)이민 정책 등을 내세운 극우 정당 복스 연합과 연정을 해야만 집권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중도층을 끌어온다는 전략이다. 산체스 총리는 자신의 집권 기간 동안 스페인이 유럽연합(EU) 평균 이상의 경제성장률과 낮은 실업률을 기록한 것과, 에너지 위기를 비교적 잘 넘겼다는 점도 내세우고 있다.

야당에선 반대로 산체스 총리의 사회당이 분리주의자 및 극좌 세력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정권을 탈환하겠다는 전략이다.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국민당 대표는 "(총선은) 빠를수록 좋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다만 북아프리카로부터의 이민자를 차단하겠다는 극우 복스 연합이 2019년 지방 선거에 비해 현재 득표율이 두 배이상으로 오르는 등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국민당이 선거에 이겨도 복스와 연정을 해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복스 연합은 페미니즘에 반대하고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등 중도층에 거부감이 큰 정책을 내세우고 있어 야권 전반의 지지율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