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安美經中이라는 화양연화

김동윤 국제부장
‘화양연화(花樣年華)’란 말은 1990년대를 풍미한 홍콩 영화감독 왕자웨이의 영화 제목으로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을 뜻한다. 대외환경 면에서 한국의 화양연화를 꼽으라면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은 1992년부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까지가 아닐까 싶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덕을 보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시대였다.

최근 미·중 패권 경쟁 격화 과정에서 한·중 관계가 악화할 조짐을 보이자 안미경중을 언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국은 여전히 한국의 최대 교역대상국이기 때문에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과거와 같은 수준의 안미경중은 이제 쉽지 않을 것 같다. 세 가지 기본 전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美 "中은 전략적 경쟁자"

우선 미국의 대중(對中) 전략이 달라졌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의 대중 전략은 ‘관여(engagement)’가 핵심 기조였다. 중국을 세계 경제에 편입시킴으로써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 다국적 기업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직후처럼 양국 관계가 잠시 냉각된 적은 있지만, 대중 정책의 큰 흐름은 유지됐다. 2011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처음 언급한 ‘피벗투아시아(pivot to Asia: 아시아로의 회귀)’정책은 대중전략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변곡점으로 미국의 대중전략은 180도 달라졌다. 그해 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미국은 수교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이자 현 국제질서의 ‘도전자’로 규정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를 ‘미치광이 전략’으로 평가절하했지만 존 바이든 행정부 들어 대중(對中) 강경 노선은 보다 체계화·구체화하고 있다.

한·중 분업구조도 달라져

중국도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 이후 후진타오 시대까지 중국은 비록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였지만 제한된 수준에서나마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었다. 상무위원 간의 집단 지도체제가 유지됐고, 언론·학문·기업 활동의 자유도 일부 보장됐다. 시진핑이 2013년 권력을 잡으면서 중국은 마오쩌둥 시대를 방불케 하는 ‘개인숭배’ 국가로 퇴보했다. 대외관계에서도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 새로운 미·중 관계)’를 거론하며 노골적으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한·중 양국 경제의 분업구조가 달라졌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양국 간 분업구조는 한국의 중간재를 중국이 수입해 완제품으로 만든 뒤 글로벌 시장에 내다 파는 ‘가공무역’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하면서 부품 자급률이 점차 높아졌다. 가전,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서도 중국은 점차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했다. 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2011~2018년 미국 시장에서 한·중 양국 수출품의 경합도 지수는 0.248에서 0.303으로 상승했다.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수출품 경쟁이 더 치열하다는 의미다. 이런 전제 조건 변화로 한·중 관계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됐다.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