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퇴 않고 버티는 '철벽' 위원장들

수직적인 관료제 정부는 한 사람이 최종 의사결정을 하고 책임도 지는 단독제 또는 독임제다. 책임 소재가 분명하고, 의사결정이 신속한 반면 신중함과 공정성이 결여될 위험이 크다. 복잡다기한 정책 이슈에 대처하기도 어렵다. 이를 보완하는 제도가 합의제 방식의 행정기구인 각종 위원회다. 전문가를 비롯한 다수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므로 전문성,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이해관계 통합·조정도 수월해진다.

이들 중에는 자문 성격을 넘어 준입법·준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독립규제위원회(IRC)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금융통화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정치적 독립성과 함께 중립성, 공정성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중앙선관위와 방통위, 반부패 총괄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민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전임 정부의 ‘알박기 인사’라고 비판받는 이들 기관의 장(長)들은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중앙선관위는 지난 정부 때 선거 현수막 관련 편파적 유권해석, ‘소쿠리 투표’ 파문, 최근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자녀 특혜 채용 의혹까지 헌법상 독립기구라는 이름이 무색해졌다. 하지만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분출하는 사퇴론에 귀를 막고 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2020년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TV조선 심사 점수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TV조선이 재승인 기준점수를 넘었다는 보고를 받고 “미치겠네” “욕 좀 먹겠네”라며 점수를 조작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사퇴를 거부하던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면직안을 재가해 강제로 물러나게 됐다.

6월 27일 임기가 끝나는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도 사퇴론에 철벽을 쳤다. 권익위는 탈북 선원 강제북송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입장 표명이나 유권해석을 거부했다. 전 위원장은 근태 논란과 관련한 감사원 감사에 대해 “불법조작감사”라며 감사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어제는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선관위 전수조사, 공직자 가상자산 전수조사 방침을 밝혀 “임기 만료를 앞두고 권익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샀다. 쿨하게 떠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