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장삿속에 밀려나는 항공기 안전

김형호 사회부장
“당신은 사고 시 승무원을 도와 승객들의 탈출을 도와야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승무원이 이행사항이 빼곡히 적힌 안내문을 내밀며 비상구 좌석 승객의 의무사항을 영어로 전할 때는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다. ‘별일 있겠어?’와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하지?’ 순식간에 두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간혹 해외 출장길에 ‘운 좋게’ 비행기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을 때 겪는 일이다.‘설마’ 했던 일이 지난 26일 제주발 대구행 아시아나항공에서 발생했다. 비행기가 213m 상공에서 비상구가 열리고 탈출용 슬라이드가 노출된 채 착륙하는 사고는 전례가 없었다. 비상구에 손을 댄 30대 승객은 항공안전법 위반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사고가 발생한 A321-200 항공기에 한해 만석에도 비상구와 가장 가까운 특정 좌석은 비워두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다른 비행기에는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A321-200 기종만 비상구 좌석에서 안전벨트를 풀지 않고도 개폐장치를 열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웃돈 받고 파는 비상구 좌석

아시아나항공의 조치가 개운치 않은 것은 이번 사건이 비상구 안전에 대한 불안함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항공기 비상구를 조작해 운항을 방해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9월 인천공항에서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가던 아시아나항공 여객기에서 ‘비상구 에러 메시지’가 떠 긴급 회항한 적이 있다. 최신 기종인 에어버스 A321NEO였다. 비상구 좌석을 추가금액을 주고 구입한 60대가 비상구 레버를 조작해 발생한 사고였다. 연료가 가득 찬 상태에서는 착륙이 불가능해 3시간 동안 공중을 맴돌다 착륙했다.

미국연방항공청(FAA) 등 항공안전당국은 비상사태가 났을 때 승객의 안전한 대피를 돕기 위해 비상구 옆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승객은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신체가 건장한 사람으로 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까지 대다수 항공사는 이 기준에 따라 탑승수속 카운터에서 적격 승객을 비상구 앞 좌석에 배정하고 탑승 승객은 승무원을 돕겠다는 서약을 했다.

안전 뒷전의 좌석 판매 재고해야

최근 4~5년 새 비상구 좌석은 웃돈을 주고 사고파는 자리로 변질했다. 저비용 항공사들이 국내·국제노선 비상구 좌석 판매로 재미를 보자 2019년 아시아나항공이 국제선 비상구석 판매에 뛰어들었다. 대한항공은 2021년부터 단거리 3만원, 장거리에 15만원의 웃돈을 얹어 국제노선 좌석을 팔고 있다. 간판 국적기까지 가세하면서 비상구 좌석은 ‘발 뻗고 가는 편한 자리’란 인식이 생겨났다. 현행 항공안전법상 비상구 좌석 판매는 운항기술기준을 지키는 한 해당 항공사의 결정 사항이다. 그런데도 오랜 기간 비상구 좌석을 따로 판매하지 않은 것은 한번 사고가 나면 치명적인 항공사고의 특수성을 고려해서다.

저비용 항공사의 수익성 지상주의에 대형 항공사마저 가세한 것은 전형적 ‘소탐대실’형 정책이다. 항공기 안전은 어떤 가치보다 우선해야 할 원칙이다. 비상구 좌석은 편한 자리가 아니라 긴급 상황 시 마지막으로 내리는 승객의 자리다. 안전을 담보로 한 수익성은 지양해야 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비상구 좌석 판매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