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6년 전 '포켓몬 쇼크'를 통해 배워야 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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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억 금융투자협회 대외정책본부장 상무특정 지적재산권(IP)을 만화,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매체로 출시해 수익을 올리는 ‘미디어 프랜차이즈’의 최강자는 누굴까? 신흥 강호 <마블 시리즈>나 유구한 전통의 <스타워즈>를 떠올린 이도 있겠지만, 이 분야의 압도적 1위는 <포켓몬스터>다. 1996년 게임으로 출시된 이래 애니메이션, 만화, 영화, 증강현실게임과 제빵제품 및 ‘띠부실(식품완구 스티커)’에 이르기까지 100조원을 훌쩍 넘는 포켓몬의 매출규모는 마블(41.4조원)과 스타워즈(68.5조원)를 가볍게 웃돈다.
이런 포켓몬에도 위기는 있었다. 1997년 방영된 TV애니메이션 중 섬광이 번쩍이는 장면에 시청자들이 집단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750명에 달하는 피해자 대다수가 미취학 아동이었기에 사회적 파장은 컸다. 이른바 ‘포켓몬 쇼크’라 불리는 사건이다.방송사와 제작사의 대응은 영민했다. 광과민성 발작예방에 관한 임상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애니메이션 제작기법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사건 이후 섬광 효과가 들어간 영상에 경고 문구를 삽입하기 시작했다. 사고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예방책을 체계적으로 마련한 덕에 포켓몬은 방송중단 4개월 만에 재방영될 수 있었다.
최근 주가조작 세력의 시장교란 행위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자본시장 종사자들은 큰 허탈감에 빠졌다. 상대적으로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자들의 터무니없이 낮은 금융이해도도 충격이지만, 겨우 꽃피우기 시작한 시장의 활기가 재차 꺾일까 우려되는 것도 사실이다.
선량한 투자자들의 인생을 파탄 낸 주가조작세력과 사기범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철저한 부당이득환수는 꼭 필요하다. 이와 별개로 제도적으로 미비한 점이 있다면, 이에 대한 보완책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합리적인 처방에 대한 고민도 병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진단착오와 과잉처방은 논란이 되는 시장의 뿌리를 뽑고 씨를 말리는 방향으로 추진되기 마련이며, 일보전진과 이보후퇴를 반복하는 시장은 잘해야 정체, 대부분 퇴보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포켓몬은 일본의 가장 성공적인 문화 수출품으로 평가받는다. 만약 1997년 당시, 영상의 기술적 문제로 인한 발작사고를 예방하겠다면서 콘텐츠 자체의 유해성이 문제라고 진단하고, 재방영은 불가하다고 처방했어도 포켓몬은 지금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포켓몬 쇼크 사례를 한 번쯤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