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속 탑니다"…악질 탈세자 공개 못하는 국세청 [관가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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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세종시 국세청 1층 브리핑실. 이날 역외탈세 혐의자들에 대한 세무조사 계획을 발표한 국세청 관계자들은 탈세 혐의자들의 신상을 캐묻는 기자들의 잇따른 교묘한 유도 질문을 피해 갔다. 탈세 혐의자들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달라는 질문에도 국세청 관계자들은 “현행법상 공개할 수 없다”며 난색을 보였다.
국세청은 이날 역외탈세 혐의자 52명에 대해 적법·공정 과세 원칙에 따라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은 △현지법인을 이용해 수출거래를 조작한 수출업체(19명) △투자수익 부당 반출한 사모펀드 및 역외 편법 증여한 자산가(12명) △사업구조를 위장해 국내 소득을 유출한 다국적기업 (21명) 등이다. 전체 탈루액은 1조원대로 추정된다.이들의 탈루 방식도 치밀했다. 무역업을 영위하는 A씨는 2018년 아들 명의로 홍콩에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회사)를 설립했다. A씨는 해외 현지법인에 제품을 위탁 제조해 공급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해 왔다. A씨는 아들 명의의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후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형식상 페이퍼 컴퍼니가 사업을 수행하는 구조로 바꿔 수출물량과 대금을 가로챘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에서 상사업체에 근무하는 박 과장이 가족회사를 통해 수출대금을 빼돌리다가 주인공(장그래)에게 적발된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A씨는 수출물량을 빼돌리며 페이퍼 컴퍼니가 챙긴 수출대금을 활용해 27채의 해외 주택을 매입하기도 했다.
B씨는 회사 지분 매각으로 얻은 자금을 자녀에게 편법 증여하기 위해 ‘강남 부자보험’으로 알려진 배당 역외보험상품을 자녀 명의로 가입하고 보험료 20억원을 대납했다. B씨 일가는 해당 역외보험으로 연 6∼7%의 배당 수익을 얻었지만, 이를 국외에 은닉하고 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다.이날 브리핑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사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플랫폼 기업의 탈세 혐의였다. 국세청이 이 회사 한 곳에 추징한 세금만 수천억 원에 달한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영업·판매·홍보·마케팅 등 필수 기능을 국내 자회사에 분산했다. 통상 국내 자회사가 모회사의 본질적인 중요 사업을 수행하는 경우 자회사는 모회사의 국내 사업장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국내 사업 수익 전체를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이 플랫폼 업체는 ‘회사 쪼개기’ 방식을 통해 각각 단순 서비스 제공자로 위장하면서 세금을 신고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거둔 수익의 대부분을 해외 법인 매출로 가져갔고, 국내 과세당국엔 비용 보전 수준의 이익만 신고·납부했다. 최근 5년간 내지 않은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등 탈루액은 수천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 국세청 설명이다.
국세청은 이 회사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플랫폼 기업이라고만 밝혔다. 국내에서 영업 중인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은 몇 곳으로 추릴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 영업·판매·홍보·마케팅 등의 기능을 자회사에 분산시킨 회사라면 후보는 더욱 좁혀진다.영문 이니셜만이라도 알려달라는 질문에 이날 브리핑에 나선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은 난색을 보였다. 이 회사의 본사 및 주요 해외 법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핵심 사업이 플랫폼인지 스트리밍인지를 묻는 질문에만 플랫폼이라고 답했다. 페이퍼 컴퍼니가 챙긴 수출대금을 활용해 27채의 해외 주택을 매입한 A씨에 대해서도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라고만 알려줬다.
국세청이 이토록 중대한 탈세를 저지른 기업과 개인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국세청 공무원들은 법률상 세무조사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국세기본법 제81조에 따르면 ‘세무공무원은 납세자가 세법에서 정한 납세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제출한 자료나 국세의 부과·징수를 위해 업무상 취득한 자료 등을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대법원 판례도 세무조사 대상자 및 세무조사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는 외부에 공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감사 때 특정 기업 및 개인의 세무조사 여부를 묻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도 국세청장 등 국세청 고위 관계자들이 “대답할 수 없다”고 진땀을 흘리는 이유다. 세무조사 여부를 캐묻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호통과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에도 국세청 관계자들이 참고 견뎌야만 하는 이유다.국세청 관계자들도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은 악질 체납자들의 정보를 일절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사례처럼 아무도 없는 대나무숲에 가서 누가 탈세했다고 소리 지르고 싶은 정도”라고 털어놨다.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국민들의 박탈감 상쇄와 조세 정의를 위해 악질 체납자에 대한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물론 지금도 국세청은 고액·상습 체납 명단공개 대상자를 공개하고 있다. 다만 체납발생일로부터 1년이 지나고 2억원 이상의 국세를 체납한 사람에 한해서다. 고액의 세금을 악질적인 방법을 활용해 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기업 및 개인에 대해서도 명단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국세청은 이날 역외탈세 혐의자 52명에 대해 적법·공정 과세 원칙에 따라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은 △현지법인을 이용해 수출거래를 조작한 수출업체(19명) △투자수익 부당 반출한 사모펀드 및 역외 편법 증여한 자산가(12명) △사업구조를 위장해 국내 소득을 유출한 다국적기업 (21명) 등이다. 전체 탈루액은 1조원대로 추정된다.이들의 탈루 방식도 치밀했다. 무역업을 영위하는 A씨는 2018년 아들 명의로 홍콩에 페이퍼 컴퍼니(서류상 회사)를 설립했다. A씨는 해외 현지법인에 제품을 위탁 제조해 공급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진행해 왔다. A씨는 아들 명의의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후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형식상 페이퍼 컴퍼니가 사업을 수행하는 구조로 바꿔 수출물량과 대금을 가로챘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에서 상사업체에 근무하는 박 과장이 가족회사를 통해 수출대금을 빼돌리다가 주인공(장그래)에게 적발된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A씨는 수출물량을 빼돌리며 페이퍼 컴퍼니가 챙긴 수출대금을 활용해 27채의 해외 주택을 매입하기도 했다.
B씨는 회사 지분 매각으로 얻은 자금을 자녀에게 편법 증여하기 위해 ‘강남 부자보험’으로 알려진 배당 역외보험상품을 자녀 명의로 가입하고 보험료 20억원을 대납했다. B씨 일가는 해당 역외보험으로 연 6∼7%의 배당 수익을 얻었지만, 이를 국외에 은닉하고 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다.이날 브리핑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사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플랫폼 기업의 탈세 혐의였다. 국세청이 이 회사 한 곳에 추징한 세금만 수천억 원에 달한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영업·판매·홍보·마케팅 등 필수 기능을 국내 자회사에 분산했다. 통상 국내 자회사가 모회사의 본질적인 중요 사업을 수행하는 경우 자회사는 모회사의 국내 사업장으로 간주한다. 이 경우 국내 사업 수익 전체를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이 플랫폼 업체는 ‘회사 쪼개기’ 방식을 통해 각각 단순 서비스 제공자로 위장하면서 세금을 신고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거둔 수익의 대부분을 해외 법인 매출로 가져갔고, 국내 과세당국엔 비용 보전 수준의 이익만 신고·납부했다. 최근 5년간 내지 않은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등 탈루액은 수천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 국세청 설명이다.
국세청은 이 회사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플랫폼 기업이라고만 밝혔다. 국내에서 영업 중인 세계적인 플랫폼 기업은 몇 곳으로 추릴 수 있다. 특히 국내에서 영업·판매·홍보·마케팅 등의 기능을 자회사에 분산시킨 회사라면 후보는 더욱 좁혀진다.영문 이니셜만이라도 알려달라는 질문에 이날 브리핑에 나선 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은 난색을 보였다. 이 회사의 본사 및 주요 해외 법인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핵심 사업이 플랫폼인지 스트리밍인지를 묻는 질문에만 플랫폼이라고 답했다. 페이퍼 컴퍼니가 챙긴 수출대금을 활용해 27채의 해외 주택을 매입한 A씨에 대해서도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라고만 알려줬다.
국세청이 이토록 중대한 탈세를 저지른 기업과 개인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국세청 공무원들은 법률상 세무조사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국세기본법 제81조에 따르면 ‘세무공무원은 납세자가 세법에서 정한 납세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제출한 자료나 국세의 부과·징수를 위해 업무상 취득한 자료 등을 타인에게 제공 또는 누설하거나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대법원 판례도 세무조사 대상자 및 세무조사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는 외부에 공개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감사 때 특정 기업 및 개인의 세무조사 여부를 묻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도 국세청장 등 국세청 고위 관계자들이 “대답할 수 없다”고 진땀을 흘리는 이유다. 세무조사 여부를 캐묻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호통과 인신공격에 가까운 발언에도 국세청 관계자들이 참고 견뎌야만 하는 이유다.국세청 관계자들도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세금을 내지 않은 악질 체납자들의 정보를 일절 공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사례처럼 아무도 없는 대나무숲에 가서 누가 탈세했다고 소리 지르고 싶은 정도”라고 털어놨다.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국민들의 박탈감 상쇄와 조세 정의를 위해 악질 체납자에 대한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얻고 있다. 물론 지금도 국세청은 고액·상습 체납 명단공개 대상자를 공개하고 있다. 다만 체납발생일로부터 1년이 지나고 2억원 이상의 국세를 체납한 사람에 한해서다. 고액의 세금을 악질적인 방법을 활용해 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기업 및 개인에 대해서도 명단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