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달라" 클린턴 구애에…1000억 통 큰 투자한 한국 기업 [강경주의 IT카페]

[강경주의 IT카페] 88회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 단독 인터뷰(2/3) ▶1편에 이어 계속
세아재단 설립 후 북중미 아이티에 학교 지어
힐러리가 직접 김 회장에서 현지 투자 요청해
"김환기 선생의 '우주'를 국내로 가져온 것 중요"
미술에도 큰 관심…세계 200대 컬렉터에 이름 올려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이 아이티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 전(前) 미 국무장관을 안내하고 있다. / 사진=글로벌세아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은 언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탓에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많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는 점과 132억원(2019년 낙찰 당시 환율)이라는 한국 미술품 경매 최고가 낙찰 기록을 쓴 김환기 화백의 '우주'를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회장님, 저를 도와주십시오(Chairman, please help me)"

김 회장은 사업 확장 외에도 '세아재단'을 설립하고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개교 6년 만에 북중미 아이티를 대표하는 교육시설로 자리잡은 세아학교는 글로벌세아의 선한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설이다. 세아학교 건립 배경에 김 회장을 향한 힐러리 전 장관의 강력한 구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2010년 1월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재건을 위한 각국의 지원이 이어진 가운데 김 회장도 어떻게든 역할을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이후 아이티 지원을 위한 첫 회의가 그해 9월 미국 국무부에서 열렸다. 김 회장도 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당시 힐러리 국무장관은 김 회장에게 먼저 다가가 "회장님, 저를 도와주십시오(Chairman, please help me)"라고 말하며 악수를 청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김웅기 회장 / 사진=글로벌세아
놀란 채 서있는 김 회장에게 힐러리 장관은 "우리는 세아가 어떤 회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라며 "아이티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요청했다. 이후 김 회장은 고심 끝에 7800만달러(한화 약 1030억원)를 투자해 아이티에 공장을 세웠다. 직접적인 지원보다 공장 설립으로 일자리를 제공해 자립을 돕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런 인연으로 힐러리 장관과 그의 남편인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10년 미국 국무장관 자격으로 아이티를 방문해 세아상역의 아이티 공장 오프닝 행사에도 참석했다. 힐러리 부부는 김 회장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귀빈으로 소개하고 재차 감사의 뜻을 표했다. 세아상역은 클린턴재단의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기부할 수 있는 자격도 취득했다.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학교를 세웠더니 폐허였던 마을에 활기가 띄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세아상역이 세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은 세아학교에서 한글과 태권도, 아리랑을 배웠다. 김 회장은 "패션 사업으로 어려운 국가를 도울 수 있어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아이티 재건사업을 하는 동안 김 회장은 클린턴 부부와 자주 만났다. 미국에 출장을 갈 때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맨해튼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이나 자택으로 김 회장을 초대해 함께 식사하고 차를 마셨다. 글로벌세아가 최빈국에 경제적, 사회적으로 기여한 부분을 인정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클린턴 부부 자택에서 김웅기 회장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글로벌세아
한국 민간 기업이 미국 전 대통령을 만나는 건 여간해선 쉽지 않다. 미국 대통령 출신이 사기업의 이익에 불필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비판을 의식해서다. 때문에 미 전 대통령들은 가급적 기업인 미팅을 하지 않고, 하더라도 비공개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클린턴 부부는 관례를 깨고 김 회장을 두 팔 벌려 맞이했다.

한국 최고 미술 작품, 고국 품에 안기다

2019년 1월 진행된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김환기의 '우주'를 약 131억8750만원(구매 수수료 미포함)에 구입한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미술계에서는 환호와 안도의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나왔다. 한국 미술품 가운데 미술사적으로 가장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은 작품이 외국에 넘어가지 않게 돼 다행이라는 안도의 목소리와 소장자에 대한 호기심이 교차했다. 이후 지난해 7월 이 작품의 소장자가 밝혀졌다. 김 회장이 글로벌세아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갤러리 S2A를 개관했고 이 자리에서 '우주' 등 국내외 현대미술 대표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회를 제공하면서다.
아이티 세아학교에서 김웅기 회장이 학생들을 바라보는 모습 / 사진=글로벌세아
김 회장은 미술 분야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세계 2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김 회장은 "중학교 때부터 그림에 취미가 있었고 사업을 하면서 틈이 날 때마다 미술작품을 구입해왔다"고 언급했다. 우주는 김환기 선생의 뉴욕생활 때 지인이자 후원자였던 김마태 박사가 소장하고 있었다. 한국 국민들이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김 회장은 "우주는 김환기 선생의 작품을 대표하는 수작"이라며 "그런 작품을 국내로 가져오게 된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또한 작품 컬렉터로서 필히 해야 할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환기 작품 중에서도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푸른색 전면점화인 '우주'는 작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큰 추상화이자 유일한 두폭화다. 작가의 말년 '뉴욕시대'에 완성한 이 작품은 127x254㎝의 독립된 그림 두 점으로 구성돼 전체 크기는 254x254㎝에 이른다. 김환기의 후원자이자 친구, 주치의였던 의학박사 김마태씨 부부가 작가에게 직접 구매해 40년 넘게 소장했으며 1971년 완성 이후 경매 출품은 크리스티 홍콩이 처음이었다. '우주'가 세운 최고가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지 않았다. 김 회장은 "김환기 선생의 최고 작품을 국내 미술 애호가들과 함께 다 볼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라고도 했다. 김 회장이 세운 S2A는 국내외 주요 미술 작품을 무료로 전시하며 미술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미술관엔 구사마 야요이의 '호박' 시리즈 중 국내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도 있다.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이 2019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받은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 '우주'를 관람객들이 감상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 인터뷰 3편이 이어집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