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길잡이 팔미도등대…120주년 맞아 점등 [인천은 지금]

인천 팔미도등대가 건립 120주년을 맞았다. 인천해수청
1950년 9월 15일 6·25전쟁의 전황을 한 방에 전환시킨 인천상륙작전. 인천 월미도에 상륙하려는 국군·연합군과 200여 척 함정의 바닷길을 안내한 팔미도(八尾島)등대에 불이 밝혀진다.

1일 인천해양수산청에 따르면, 이번 점등은 팔미도등대 탄생 120주년을 맞아 1일 오후 일몰쯤에 점등하고 다음날 아침 소등한다. 현재 등대 역할을 하는 신형 등대가 있기 때문에 옛 등대는 하룻밤만 불이 켜진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인천 팔미도등대는 지난 1903년 6월 1일 대한제국 시절 등장해 선박의 해상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등대 높이는 7.9m, 지름은 2m 규모로 지난 2003년 12월 퇴역했다.

팔미도는 인천항 남서쪽 16㎞에 있는 무인도다. 등대는 1903년 당시 대한제국에서의 필요성보다는 일본의 영향으로 건립됐다. 팔미도가 군사·전략의 요충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등대의 설계, 시공, 장비 설치 등 모든 건립 과정이 열강의 주도로 이뤄진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003년 12월 전망대를 갖춘 높이 26m의 신 등대가 건립돼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지상 3층 규모의 팔미도 등대역사관에서는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기여한 팔미도 등대의 역사를 알 수 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당시 상황을 재현한 조형물이 인천상륙작전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강준완 기자
▶인천상륙작전 길잡이 팔미도등대
팔미도등대는 1950년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에 큰 역할을 했다.

인천 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암초가 많아 등대의 안내 없이는 야간 상륙이 어려웠던 상황. 맥아더 사령부는 KLO부대(켈로부대) 등 특공대를 조직해 '팔미도 등대 탈환 작전'에 나섰다. 팔미도는 북한군이 장악하고 있어서다.

특공대는 팔미도등대를 지키고 있는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14일 오후 늦게 등대 탈환에 성공해 15일 새벽 점등에 성공한다. 팔미도등대는 이런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40호, 해양수산부 등대문화유산 1호, 국가문화재 사적 제557호로 등재됐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팔미도등대 점등 120주년을 맞아 1일 오전 11시 팔미도등대 천년의 광장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 행사에는 인천지방해양수산청장, 인천시 부시장, 인천보훈지청장, 인천해역방위사령부 참모장, 전‧현직 등대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김종헌 배재대 교수(해양수산부 등대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가 '바다의 별 – 등대'라는 주제로 등대의 역사성과 중요성에 대해 강연했다. 김성범 인천지방해양수산청장은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한 팔미도등대가 앞으로도 인천항의 어두운 바닷길을 밝히고 시민들에게 쉼을 제공하는 해양문화공간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1일 오전 인천 팔미도에서 '팔미도등대 점등 120주년'을 맞아 기념식이 열렸다. 인천해수청
인천=강준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