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경계경보, 그래도 오발령이 낫다

담당자 문책하면 위기대응 어려워
재난대응체계 '전화위복' 삼아야

이상은 사회부 기자
“많은 분께 혼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31일은 아침잠을 깨운 ‘삐-’ 경계경보 소리와 사이렌, 가타부타 맥락도 없고 어디로 가라는 지시도 없이 무조건 대피하라고만 한 무책임한 메시지에 940만 서울 시민이 우왕좌왕한 하루였다.오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 시장은 사과했지만 항변도 담았다. “북한이 남쪽으로 (발사체를) 발사한 상황에서 즉각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경보를 발령한 것”이라며 “긴급문자는 현장 담당자의 과잉 대응이었을 수는 있지만 오발령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가 발송한 백령도 경계경보 지령(‘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 본 백령도 주민과 인천지역 담당자들은 무슨 뜻인지 금세 알았겠지만, 익숙지 않은 서울시 담당자는 순간적으로 긴급상황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특히 서울시 공무원들은 작년 이태원 참사 이후 갑작스레 닥친 재난 상황을 잘못 다루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커져 있는 상태다.

물론 잘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후 44분간은 혼란이 거듭됐다. 행안부는 서울시가 곧바로 취소 문자를 보내지 않는다며 ‘서울시 문자는 오발령’이라는 문자를 발송했다.서울시는 이에 발끈한 듯 (서울시에는 발령되지도 않았던) ‘경계경보가 해제됐다’는 문자를 또 보내며 기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오 시장의 항변 가운데 일부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긴급상황에서 다소 과잉 대응을 했다고 해서 문책이 먼저 나오면 앞으로 실무 공무원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대목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서울시는 담당자 다 자르라’는 비난이 한가득이다. 그래도 문책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문책부터 시작하면 우리는 진짜 위기 때 정말 큰 비용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오발령을 용인하는 게 결정적인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을 놓치는 것보다 낫다.

본의 아니게 우리 모두 위기에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하루였다. 행안부와 서울시 등은 이번 일을 계기로 재난 메시지와 대피 방법 전달 체계를 정돈하겠다고 한다. 시민들도 저마다 가까운 대피로를 살피고 유사시 대응법을 익혀둘 필요가 있다. 나중에 우리에게 진짜 위기가 닥쳤을 때 “그때 그 난리를 피워서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