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日, 돈풀기 끝내면 유로존 채권시장 대혼돈"

'투자 큰손' 일본 자금
유럽서 빠져나갈 우려
유럽중앙은행(ECB)이 일본의 통화정책 전환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일본은행(BOJ)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종료하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채권시장에서 일본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갈 것으로 내다봐서다.

ECB는 31일(현지시간) 발표한 ‘금융 안정성 검토 보고서’에서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끝내기로 결정한다면 유로존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투자자들의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ECB는 연 2회 금융 안정성 검토 보고서를 발간한다.ECB는 역내 금융시장을 위협할 요인 중 하나로 일본 자금의 이탈을 꼽았다. ECB는 “최근 미국 지역은행들의 파산과 스위스 대형은행 크레디트스위스 매각 등 각종 악재에도 유로존 금융시장은 대체로 회복력을 보였다”면서도 “유로존 금융시스템이 처한 무수한 위협 요인 중 하나로 단연 일본 투자자들의 철수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 투자자들은 유로존 국채시장의 ‘큰손’으로 꼽힌다. 특히 프랑스 국채를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 ECB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 종료로) 일본 금리가 상승하면 일본 투자자들이 자국 투자를 늘릴 수 있다”며 “유로존 역내 채권 평가손실이 발생하고 일본의 무위험지표금리(RFR)가 높아지면 일본인들의 해외 투자 수요가 저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은행은 단기금리를 연 -0.1%, 장기금리를 ‘연 0%±0.5% 정도’로 통제하는 장단기금리 조작 등 금융완화 정책을 10년 이상 이어오고 있는데, 우에다 가즈오 신임 일본은행 총재가 정책 방향을 전환하면 일본 국채 금리가 오른다.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국채 투자를 줄이고 자국 국채 비중을 늘릴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ECB가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시작하는 시기와 일본의 통화정책 변화가 맞물릴 경우 유로존 채권시장에 ‘대재앙’이 닥칠 수 있다는 게 ECB의 고민이다.

ECB는 이달 초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면서도 “자산매입프로그램(APP) 포트폴리오 축소는 일정하고, 예측 가능한 속도로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7월부터 APP 만기 채권 원금의 전액 재투자를 중단하고, 6월 말까지 매달 평균 150억유로씩 투자를 축소하기로 했다. 지난 수년간 양적완화를 위해 ECB가 사들인 자산 규모는 8조5000억유로(1경2421조원)에 달한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