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형편없는 낙제생' 베르베르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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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씨, 오늘은 뭘 쓰세요?“너처럼 형편없는 녀석은 커서 아무것도 되지 못할 거야. 아, 하나 잘하는 게 있긴 하지. 엉뚱한 소리 하나는 잘해, 암송은 꼴찌인 녀석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480쪽│1만8800원
늘 선생님들을 애먹이는 골칫덩이 낙제생이 있었다. 여덟 살짜리 그 소년은 시를 암송하지도, 세계 각국의 수도와 유명한 지명을 기억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운동에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 선생님과 축구부 주장 등 윗사람과의 관계도 엉망이었다. 부모님은 수시로 학교에 불려갔다. 어느 모로 보나 모범적인 학생과는 거리가 멀었다.야단만 듣던 소년은 뒷마당에 있는 개미집을 하염없이 관찰했다. 그런 뒤 과감하고 엉뚱한 이야기를 짧게 글로 지어냈다. 훗날 세계적 밀리언셀러가 되는 <개미>의 뼈대가 탄생한 것이다.
<개미> <뇌> <신>을 비롯해 여러 베스트셀러를 펴낸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1)의 삶을 다룬 책이 출간됐다.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는 그가 쓴 첫 번째 자전적 에세이다. 전 세계 35개 언어로 번역된 책 3000만 부를 팔아치운 스타 작가의 모습 뒤에 감춰진 ‘인간 베르베르’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설가가 되는 방법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 베르베르가 열일곱 살에 읽은 한 작가의 인터뷰 기사는 인생을 바꿔놨다. 그는 자신만의 규칙을 세웠다. 매일 오전 8시부터 12시30분까지, 하루에 글 열 장을 쓰는 것. 그는 지금까지 30여 년간 이 습관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 보이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는 맨땅에서 솟아나는 법이 없었다. <개미>도 12년 동안 수없이 출판을 거절당하며 수정·보완을 거듭한 뒤에야 출간됐다. 그는 명성을 얻은 지금도 “여전히 내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다”며 “새 책을 쓸 때마다 극도의 부담과 위험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베르베르는 어느덧 환갑을 넘겼다. 그는 “글 쓸 힘이 있는 한, 내 책을 읽어줄 독자가 존재하는 한 계속 쓸 생각”이라고 했다. 인생을 돌아보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삶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그는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삶의 순간순간을 더 음미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