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인구소멸 막자"…'꽃의 섬' 신안 외딴 마을, 현대미술 거장이 몰려온다
입력
수정
지면A2
'야심만만' 신안군의 지역 재생 프로젝트“도초도에 사는 70대 할매가 손목에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놨습디다. ‘올라퍼 엘리아슨’이라고요. 관광객이 많이 오면 설명해야 한다는 겁니다.”
올라퍼 엘리아슨·마리오 보타 등
세계적 설치미술가 작품 유치
안좌도엔 내년 '플로팅 뮤지엄' 개장
2일 전남 신안군 압해읍 신안군청에서 만난 박우량 신안군수는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신안군을 1004개의 섬으로 구성된 도서 지역 정도로만 알고 있는 미술 애호가라면 깜짝 놀랄 만한 얘기다.엘리아슨은 덴마크 출신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다.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은 잘 모를 수도 있는 그의 이름을 신안 외딴섬 주민의 상당수가 안다. 엘리아슨이 내년 말 수국을 형상화한 ‘대지의 미술관’을 도초도에 지을 예정이란 게 알려져서다.
‘꽃의 섬’으로 유명한 신안군은 지금 ‘예술의 섬’으로 변신 중이다. 꽃으로 내국인을 불러들였다면, 이제 문화·예술로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게 신안군의 야심 찬 구상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인구 소멸 위기 1위, 재정자립도 꼴찌 수준인 신안의 대반전이다.
○10년 전 뿌린 예술의 씨앗
신안군을 예술의 섬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은 2012년 무렵부터 싹텄다. ‘징검다리 4선’인 박 군수는 그해 2월 흑백사진의 대가 마이클 케냐를 신안군에 초청했다. 케냐는 장산도 월산 소나무 숲, 흑산도 사리마을 앞 칠형제바위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때부터 박 군수와 신안군 공무원들은 예술로 도시 재생에 성공한 해외 사례를 샅샅이 뒤졌다. 영국 북동부의 작은 탄광 도시였던 게이츠헤드의 사례가 그중 하나다.영국을 대표하는 설치 미술가 안토니 곰리는 소멸 직전의 게이츠헤드에 ‘북방의 천사’라는 거대 철제 조각상을 세웠다. 220t의 철근을 사용해 제작한 20m 높이의 조각상은 높은 언덕에서 마을을 굽어보며 관람자를 단숨에 압도한다. 이 덕분에 한때 탄광촌이었던 작은 도시는 세계적인 예술 도시로 명성을 얻었다.박 군수는 곰리의 작품을 신안의 섬에도 들여와야겠다고 결심했다. 돈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곰리는 아랍에미리트(UAE)가 300억원을 작품 제작에 투자하겠다고 제안했는데도 자신의 콘셉트에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을 정도로 콧대가 높은 작가다.신안군 직원들은 2018년 무렵부터 곰리 측에 메일을 수도 없이 보냈다. “한 번만 와서 신안의 섬을 봐 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응해 작년까지 비금도를 여러 차례 찾은 곰리는 이곳의 명사십리 해변에 반했다.그는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듯한 천연 그대로의 섬이 어떻게 이렇게 남아 있을 수 있냐”며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신안군은 곰리와 계약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최종 성사되면 신안군은 곰리의 작품을 내년 봄께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 대기업이 40억원어치의 철근을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섬마다 박물관 한 곳씩
신안군 안좌도엔 요즘 물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의 ‘플로팅 뮤지엄’이 설치되고 있다. 이날 현재 공정률은 80%다. 일본의 ‘이누지마 아트 프로젝트’를 주도한 야나기 유키노리가 설계를 맡았다.이누지마는 1909년 세워진 구리 제련소 덕분에 한때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이다. 하지만 제련소가 문을 닫으면서 인구 55명, 평균 연령 73세의 섬으로 소멸 위기에 놓였다. 야나기는 이랬던 이누지마를 나오시마에 버금가는 예술의 섬으로 변모시켰다.자은도에 들어설 ‘인피니또 뮤지엄’은 마리오 보타와 박은선 작가의 공동 작품이다. 보타는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경기 화성시 ‘남양성모성지’ 등을 설계한 스위스 출신 건축가다. 이탈리아에서 활동 중인 조각가 박은선은 지난해 7월 안드레아 보첼리 콘서트에 11m 높이의 조각을 설치해 유명해졌다. 박 군수는 “광주 비엔날레 때 박근혜 대통령의 걸개그림을 만들었던 홍성담 작가에게 신의도에 동아시아 인권평화 미술관을 지어달라고도 요청했다”며 “24개의 섬에 1도(島) 1뮤지엄을 세우는 게 신안군의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흑산도에 ‘새공예박물관’을 완공하는 등 지금까지 13개 섬에 박물관을 설치했다.
박 군수는 “소멸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신안을 세계인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이런 일을 한다”고 했다. 이어 “신안을 문화·예술의 섬으로 조성해 섬살이의 자존감을 확실히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안=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