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 동산 박주환의 통 큰 기부…'한국화 100년'을 한눈에 보다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방화랑이 60년간 모은 작품
국립현대미술관에 209점 기증
1920년 이후 한국화 변화 보여줘
이상범·김기창·정종여 ‘송하인물’(1949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서울 인사동 거리에 있는 동산방화랑. 1961년 동산방표구사로 출발한 이곳은 1974년 한국화 전문 화랑이 됐다. 고(故) 동산 박주환 대표가 설립한 걸 아들 박우홍 대표가 이어받았다. 동산방화랑은 지난 60여 년간 한국화 신진 작가 발굴과 실험적인 전시 기획을 주도했다. 청전 이상범, 월전 장우성, 천경자 등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동산방화랑을 찾았다.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이 열리며, ‘스타가 되는 등용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동산방화랑이 60년 넘게 모은 한국화의 정수들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공개됐다. 박주환 대표가 모은 한국화 작품 209점을 아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덕분이다. 박 대표는 2021~2022년 회화 198점, 조각 6점, 판화 4점, 서예 1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달했다. 그의 기증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화 소장품 수는 총 1542점으로 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중 90점을 골라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관객을 맞는다.전시는 192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한국화의 시대적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작들로 꾸몄다. 시기별 총 4부로 전시 공간을 나눠 각 화풍의 특징을 보여주는 작가 57명의 작품을 전시했다. 1부에서 가장 먼저 관객을 맞는 작품은 1920년대 당시 근대화를 모색한 작가들의 작품이다. 이 시기 대표작은 이상범의 ‘초동’. 1926년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으로, 1977년 박주환 대표가 당시 재정난을 겪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을 돕기 위해 기증했다.

1945년 광복 직후부터 6·25전쟁까지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맞선 예술가들도 조명한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이 된 창작 문화는 작가들이 공동 작업하는 ‘합작’이다. 이상범, 김기창, 정종여 세 작가가 각각 맡은 부분을 그린 뒤 합친 ‘송하인물’이 그런 작품이다. 이 그림에 호(號)와 낙인이 세 개 찍힌 이유다. 작품 속 소나무는 정종여, 사람은 김기창, 화제는 이상범이 써서 퍼즐 맞추듯 그림을 그렸다.

3·4부에서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화의 비교적 최근 모습을 다룬다. 전통적 회화기법에 과감한 조형실험을 시도해 현대 한국화를 만들어낸 작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 이 시대 작가들은 전통 수묵화의 근간인 ‘지·필·묵’을 내던지고 새로운 재료로 남다른 상상력을 펼친 것이 특징이다.
송수남 ‘자연과 도시’
석운 정은영의 ‘모란과 나비’는 신사임당 ‘초충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느낌을 준다. 송수남의 ‘자연과 도시’는 1980년대 가로수와 높은 건물로 덮인 도시의 모습을 다른 재료 없이 수묵으로만 그려냈다. 한국화 사이에서 서양화와 판화 작품을 찾아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재미다.

정은영 ‘모란과 나비’
전시장엔 관람객이 한국화를 그려볼 수 있는 체험형 공간도 마련됐다. 테이블 위 물을 이용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식이다. 물이 마르면 그림도 사라진다.시대를 아우르는 한국화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기획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해하기 힘든 그림도 많지 않다. 한국화를 잘 모르는 사람과 동행해도 괜찮다. 작품마다 서로 다른 특색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한국화는 거기서 거기’라던 편견도 사라진다.

표구사였던 동산방의 여섯 가지 표구 방식을 보여주는 전시는 덤이다. 웬만해선 보기 힘든 표구에 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다. 많은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는데 각 작가를 더 깊이 있게 설명하지 못한 건 아쉬운 대목이다.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