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으로 6조 벌었다…삼성전자의 '귀신같은 투자' [김익환의 컴퍼니워치]

2012년 사들인 ASML 지분 1.5%
지분가치 3000억→6조 '잭팟'
'슈퍼을' 반도체 장비회사로

TSMC는 ASML 주식 전량매각
'투자귀신' 삼성전자의 선구안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걸린 삼성 깃발. 사진=연합뉴스
2012년. 삼성전자는 경쟁자인 인텔, TSMC와 한 네덜란드 회사 주식을 샀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이다. 요즘 ASML은 반도체 시장에서 '슈퍼을(乙)'로 통한다. 하지만 11년 전에는 연구개발비가 없어 삼성전자 등으로부터 투자비를 조달했다. 삼성전자가 3000억원가량에 사들인 ASML 지분 1.6%는 현재 6조원이 넘어선다.

5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현재 보유한 ASML 주식은 629만7787주(지분율 1.6%)다. 지난 2일 ASML 종가(724.65달러)를 적용하면 삼성전자가 보유한 지분가치는 45억6369만달러(약 6조240억원)로 집계됐다. 취득원가(3630억원)에 17배가량 불어난 금액이다.ASML은 반도체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 최근 석 달 새 15.9% 올랐다. 지난 5월 26일(735.93달러)에는 1년 '최고가'를 찍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2012년에 ASML 지분을 매입했다. ASML은 연구개발비를 마련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3개사를 대상으로 의결권이 제한된 주식을 발행했다. 삼성전자는 당시 ASML 지분 3%를 매입했지만 2016년 보유 지분 절반가량(1.4%)을 매각했다. 인텔과 TSMC도 ASML 지분을 각각 15%, 5% 사들였다. 인텔은 보유 지분율을 현재 3%까지 대폭 낮췄고, TSMC는 2015년 지분 전량을 팔았다.

1984년 필립스 본사 옆 목재 건물로 시작한 ASML은 삼성전자 등으로 마련한 자금으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개발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대당 가격이 3000억원 수준인 EUV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노광이란 빛으로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공정을 뜻한다. 회로를 미세하게 새길수록 웨이퍼에서 생산할 수 있는 고성능 반도체칩 수가 많아진다.ASML 연간 생산 물량이 30~40대 정도에 불과해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TSMC 등 반도체 업체의 경쟁이 치열하다. ASML이 슈퍼을로 통하는 배경이다. EUV 노광장비 수급전이 치열해진 요즘은 "ASML은 '슈퍼을'이 아니라 '슈퍼갑(甲)'이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2020년부터 여러 차례 네덜란드 ASML을 방문해 EUV 노광장비 공급 방안 등을 놓고 긴밀히 협의한 바 있다. ASML은 삼성전자 투자수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한편 반도체 사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업 파트너로 발돋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