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행진' 명품 산업에 마침내 먹구름…"유럽증시 악재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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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고공행진하던 명품 산업에 제동이 걸렸다. 명품 소비를 이끌었던 소비 대국 중국의 경기 재개가 지연되는 데다, 전통 강호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어서다. 한때 시가총액 전 세계 10위 안에 들었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를 비롯한 명품 기업들의 주가도 뒷걸음질치고 있다.
○명품주 고점 찍었나
명품 기업 10곳이 포함된 스톡스 유럽 럭셔리 인덱스는 지난달 4.85% 하락했다. 월간 수익률이 하락한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이 지수는 지난해 10월 말 중국이 제로 코로나 방역 조치를 해제할 조짐을 보인 후 지난 4월 고점까지 약 50% 올랐다. LVMH와 에르메스, 케링 그룹과 리치몬트, 몽클레어, 버버리, 디올 등이 포함돼 있다.지난 4월 유럽 기업 중 처음으로 시가총액 5000억달러를 돌파했던 LVMH 주가는 최근 한 달간 4.90% 하락했다. 2일 시가총액은 500억달러 이상이 증발한 4474억달러로, 시가총액 기준 전 세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LVMH의 상승세로 전 세계 부호 1위에 올라섰던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에 다시 자리를 내줬다.
최근 수 년간 ‘명품 큰손’으로 떠오른 중국 매출이 실적을 끌어올린 덕이다. PwC는 중국의 명품 시장 규모는 3250억달러(약 427조7500억원)로 세계 명품 시장의 5분의 1 수준으로 추산한다.
개별 명품 기업들의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그만큼 높아졌다. 블룸버그와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세계 최대 명품 기업인 LVMH와 2위인 케링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7%다.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히는 에르메스는 20%, 까르띠에와 피아제 등 고가 주얼리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리치몬트는 25%였다. 글로벌 시계 브랜드 스와치는 중국 매출 비중이 35%에 달했다.○미·중 경기 둔화에 실적 우려
그러나 고공행진하던 명품 산업에 제동을 건 나라도 중국이다. 제로 코로나 방역조치 이후에도 중국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서다. 중국의 내수 경기를 의미하는 소매판매는 4월 3조4910억위안(약 669조원)으로 전년 동월보다 18.4% 늘었다. 시장 예상치인 20.1%에 못 미쳤다. 지난해 4월엔 상하이 등 주요 도시들이 봉쇄되며 소매판매가 11.1% 떨어졌던 점을 고려할 때 회복세가 예상에 못 미쳤다는 평가다.명품 소비의 주축인 중국 청년(16~24세)의 실업률이 20.4%까지 오르면서 우려는 커졌다. 중국에선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출생자인 Z세대가 명품 소비를 좌우한다. 이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명품 소비가 직격탄을 입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팬데믹 기간과 지난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거치며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 인상을 단행하면서 수요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통 소비 대국인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도 여전하다. 지난해 LVMH 매출 중 27%가 미국에서 나왔다. 케링 그룹도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매출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7%다. 그러나 미국은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잠정치가 1.3%로 시장 추정치(2%)를 크게 밑돌며 올해 경기 침체를 맞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때문에 증권가에서도 명품 기업들에 대한 비관론이 나온다. 프랑스 금융그룹 소시에테 제네랄의 롤랑 칼로얀 전략가는 “현재 수준의 주가에서 투자자들에게 명품 기업 주식을 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투자자들은 이 주식들을 익절하고 다른 업종으로 갈아타기에 좋은 시기가 아닌지 자문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적은 탄탄” 자신감도
문제는 명품주의 부진이 유럽 증시 전체를 출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 기간 명품주 주가가 상승세를 타면서 유럽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의 시총 상위 10개 중 명품 기업은 LVMH, 로레알, 에르메스, 디올 등 4개다. 약 10년 전인 2010년대 초에는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럭셔리 주식 10개가 유럽증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다.
블룸버그는 “명품주의 하락은 유럽 시장 전체의 하락, 특히 프랑스 시장의 약세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그러나 긍정론도 있다. 명품은 불경기에도 수요가 급락하지 않는 비탄력적인 상품인 만큼 실적이 크게 둔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증권가는 올해 명품 기업들의 매출 증가율이 빅테크 기업들을 압도할 것으로 봤다. 애널리스트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에 따르면 에르메스의 올해 매출은 전년 대비 16.4% 증가할 전망이다. 몽클레어 매출은 15.4%, LVMH은 10.8%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빅테크 매출 증가율 전망치는 한 자릿수에 그쳤다.
명품 기업 내부에서도 실적에 대한 자신감은 여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FT가 모나코에서 연 ‘럭셔리 산업 서밋’에서 LVMH 임원인 시드니 톨레다노는 “세계에 미국과 중국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국과 태국 등 아시아 시장이 번창하고 있고, 인도와 아프리카 등 잠재적인 시장도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