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청춘들이 찾아가는 전당포

1921년 나온 현진건의 소설 '빈처'에는 작가가 된답시고 일은 안 하고 글쓰기만 하는 백수 남편과 세간이나 옷가지를 전당포에 잡혀가면서 살림을 꾸려나가는 아내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내가 아침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장문을 열고 하나 남은 모본단 저고리를 찾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 근현대 문학 작품에는 전당포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들은 전당포를 서민들의 삶의 고단함과 애환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그려냈다.
전당포는 역사적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전당'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조선시대에 쓴 고려시대 역사책 '고려사'(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라고 한다.

근대적 의미의 전당업은 조선 후기 이후 시작됐다.

화폐 경제가 발달하면서 전당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급전이 필요할 때 가장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 된 것이다. 근대적인 법체제를 갖춘 전당포에 관한 법률은 1898년 11월 관보에 실린 '전당포 규칙'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당포가 일반화되기 시작한 1960∼70년대는 TV와 라디오, 재봉틀 등의 가전제품이 주로 담보로 잡혔고, 1980년대는 밍크코트나 비디오 등을 주로 전당포에 가져왔다고 한다.

금이나 은, 시계 등 귀금속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전당포를 찾는 물품들이다. 금융기관의 대출 문턱이 낮아지고 신용카드가 보편화되면서부터는 우리 사회에서 전당포의 역할이 차츰 사라져 갔다.
요즘 거리에서 전당포 간판을 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20∼30대들의 전당포 이용이 늘고 있다는 뉴스들이 최근 심심찮게 나온다.

뉴스를 보는 마음이 씁쓸하다.

우리 청년들의 삶이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5일자 한 일간지에도 '청춘의 꿈 담긴 노트북, 전당포에 쌓인다'(서울신문)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청년들이 휴대전화나 노트북과 같은 IT 제품들을 주로 맡기는데 중고 시세의 최대 60%까지 대출해준다고 한다.

돈을 빌린 뒤 내야 하는 이자는 법정 최고 금리인 연 20% 수준에 육박한다.

특히 코로나 이후 젊은 층 손님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전당포 대표는 "20∼30대 손님들이 하루 평균 10명 정도 방문한다"고 인터뷰했다.

SNS 등에는 'IT 전당포'로 알려진 곳도 있다는 소식이다.
청년층의 악화한 경제적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최근 속속 나왔다.

한국은행이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에게 낸 '가계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30대 이하의 대출 잔액이 작년 4분기 현재 은행권과 2금융권을 합해 514조5천억원으로, 3년 전보다 27.4% 늘었다.

30대 이하의 대출 증가율은 모든 연령대보다 높았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경제적 기반이 약한 청년층의 대출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말 기준 30대 이하 청년층 취약차주가 46만명으로 전체 취약차주의 36.5%에 달한다는 한은 통계도 있다.

한은은 금융기관 3곳 이상에서 대출받은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신용(7∼10등급) 또는 저소득(하위 30%)인 대출자를 취약차주로 분류한다.

저신용자들은 금융권 대출이 그만큼 어렵다.

정부가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에 최대 100만원을 당일 빌려주는 '소액 생계비 대출'이 큰 인기를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3월 27일 시작된 이 대출 신청은 두 달 만에 4만3천549건, 268억원에 달했다.

금리가 연 15.9%나 됐는데도 사람들이 몰린 것은 당장 100만원을 구하기 어려운 처지인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 대출 신청자의 절반 이상도 30∼40대라고 한다. 이자가 높지만 당장 몇십만원을 융통하기 위해 '청춘의 꿈'을 담은 IT 제품을 들고 전당포를 찾아가야 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