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1억원과 복권 당첨금 1억원의 무게 [하준삼의 마켓톡]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객관적 기준으로 자금 사용하는 건 불가능
용도별 계좌 만들어 분리 관리하는 게 합리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퇴직금으로 받은 1억원과 복권에 당첨돼 받은 1억원 중에서 여러분은 어떤 돈을 더 신중하게 사용할까요? 오랜 기간 회사에 근무해 받게 되는 퇴직금이겠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복권 당첨금 1억원이라는 돈에 '복권 당첨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진 않습니다.

주식을 투자해서, 200만원의 수익이 발생했을 때 웬지 '공돈'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 500만원의 손실이 발생했을지라도요. 따라서 평소 사고 싶었던 가방도 사고, 비싼 레스토랑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기도 합니다.이렇게 같은 돈인데, 돈의 출처나 사용 계획에 따라 마음 속으로 가치를 다르게 정하고 각각 따로 관리하는 것을 심적회계(mental accounting)라 하고, 마음의 회계장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즉 돈의 출처에 마음의 꼬리표를 달아놓고, 돈을 쓸 때도 그 꼬리표의 성격에 따라 사용합니다. 쉽게 번 돈은 마음 편하게, 어렵게 번 돈은 신중하게 사용처를 고민합니다.

만약 이와 같은 상황에서 자금을 컴퓨터나 인공지능(AI)이 관리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지금 주식에서 이익을 보더라도 과거에 입은 손실을 감안해 지출을 할 겁니다. 그리고 퇴직금으로 받은 1억원과 복권 당첨으로 받은 1억원의 출처와 상관없이 사전에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자금을 집행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에 쓰는 돈인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쓰는 돈인가에 따라 마음에서 중요도를 정하고, 똑같은 금액이라도 기분 좋고 편하게 또는 깐깐하고 어렵게 사용하기도 합니다.우리나라 주부들은 대부분 알뜰합니다. 마트에서 두부, 계란을 살 때에도 품질과 가격표를 꼼꼼히 확인해 장을 봅니다. 그런데 미용실에서 몇만원이 드는 머리를 할 때에는 가격을 깎기보다는 어떤 만족을 얻느냐에 관심을 둡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MZ세대들은 아이돌 콘서트 티켓에 비교적 큰 비용을 아낌없이 쓰고, 반려견과 반려묘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사료·미용 비용도 생각보다 많이 지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매달 내야하는 공과금과 식비, 월세 비용 등은 꼼꼼하게 지출내용을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줄일 수 있는지 고민을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똑같은 돈이라도 사용할 때, 객관적 지표에 의해서 판단하기보다는 본인의 경험, 성향, 주관적 기준에 따라 사용해 때때로 과도한 지출이나 불합리한 금융자산 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매번 돈을 사용할 때, 인공지능의 판단이나 대기업의 재무팀처럼 지출규정에 의해 합리적으로 사용처를 결정하고 비용을 치르기는 불가능하겠죠. 또 그렇게 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적이지 않고요. 맛있는 음식을 맛보고 씹어보면서 먹지 않고, 여러 음식을 믹서기에 갈아서 훅 하고 한번에 마시는 게 재미없기도 하고요.

쉽게 번 돈이나 어렵게 번 돈이나, 돈의 실제 객관적 가치는 동일합니다. 매월 나가는 공과금 비용이나, 헤어 스타일을 바꾸는 데 들어가는 비용, 콘서트 티켓 비용 모두 동일한 돈입니다.
즉, 어떤 돈이든 돈에 꼬리표는 없습니다. 단지 사용하는 내가 용처를 정하고 또 그 돈을 사용하는 가치의 높고 낮음을 정하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돈을, 자금을 관리하는 것이 비교적 합리적인 방법일까요?첫째 큰 자금이 들어가는 목적자금은 안전성에 무게를 두고 계좌별로 관리합니다. 집을 마련하기 위한 목돈이나,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자금은 기간에 맞게 정기예금이나 안정성 있는 채권으로 운용합니다. 자녀 대학 학자금이나, 새 자동차를 구매하기 위한 자금은 금액과 기간을 정해 적금으로 마련합니다.

둘째 생활자금과 취미활동 등은 용도별로 계좌를 따로 만들고 현금카드나 체크카드를 사용합니다. 매월 일정하게 발생하는 생활비는 별도 계좌와 현금카드를 사용하고, 나의 취미·모임 비용은 별도의 계좌와 현금카드를 만들어 분리 사용합니다.

요즘 동호회나, 각종 모임에서 만드는 모임통장이 인기입니다. 등산과 골프, 동창 모임 등 각종 모임에서 관리하는 통장은 그동안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출내역은 결산이나 공지할 때나 알 수 있었고, 회비가 정확하게 어떻게 지출되는지 제대로 알기 어려워 가끔 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요즘에 나오는 모임통장들은 다릅니다. 입출금 내역과 사용현황을 계좌에 연결된 회원들이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어 회비가 투명하게 관리됩니다. 그 모임의 성격에 맞게 사용처와 금액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생활비 통장 외에 취미활동이나 인생에 재미를 줄 수 있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위의 동호회 통장처럼 계좌를 별도로 만들고 자금도 별도로 사용·관리한다면, 과도한 지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셋째 10만원, 100만원 등 일정금액 이상 지출을 할 때에는 한 번 더 용도를 생각해 봅니다.
심적회계 장부가 사람마다 다른 기준으로 적용돼 사용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예상하지 못한 돈을 사용할 때, AI처럼 객관적 기준을 적용해 검토해 보는 겁니다. 취미활동에 들어가는 돈은 인생에 활력을 주는 역할을 하지만 금액이 과도한 것은 아닌지, 이 돈으로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건 아닌지 지출을 결정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면 예상하지 않은 지출규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한 가지 정답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개인에게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완벽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돈에 꼬리표는 없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돈의 용도별 그리고 계좌별 관리를 생활화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지출 상황에서는 'AI라면 어떻게 자금을 집행했을까'를 짚어보시길 권합니다. 때론 아쉬운 지출결정이 있겠지만 위의 방법들로 여러 경험이 쌓이면, 예상하지 못한 지출을 줄이고 보다 합리적으로 자금을 관리할 수 있게 될 겁니다.<한경닷컴 The Moneyist> 하준삼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 교수,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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