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心山書屋詩庭有感(심산서옥시정유감), 姜聲尉(강성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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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心山書屋詩庭有感(심산서옥시정유감)

心山書屋有詩庭(심산서옥유시정)
遠近忙閒爭現形(원근망한쟁현형)
天惡俗塵時灑雨(천오속진시쇄우)
花歡佳日數播馨(화환가일삭파형)
女姸男俊童還秀(여연남준동환수)
誦潔簫淸舞亦靈(송결소청무역령)
情與酒深無剩恨(정여주심무잉한)
能知雅會永年靑(능지아회영년청)

[주석]
* 心山書屋(심산서옥) : 심산서옥.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에 위치한 건물로 서실에서는 붓글씨를 가르치고, 뒷마루와 아담한 뜨락에서는 시낭송회와 작은음악회 등을 열고 있어, 문화사랑방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 詩庭(시정) : 한글 “시뜨락”을 한역한 말이다. / 有感(유감) : 감회가 있다.
* 有詩庭(유시정) : “시뜨락”이 있다.
* 遠近(원근) : 멀고 가까움, 원근. / 忙閒(망한) : 바쁘고 한가함. / 爭(쟁) : 다투다, 다투어. / 現形(현형) : 모습을 눈 앞에 드러내다, 모습을 보이다. ※ 이 구절에서의 ‘遠近忙閒’은 ‘遠近과 忙閒에 관계없이’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 天惡俗塵(천오속진) : 하늘이 속세의 먼지를 싫어하다. / 時(시) : 이따금. / 灑雨(쇄우) : 비를 뿌리다.
* 花歡佳日(화환가일) : 꽃이 좋은 날을 기뻐하다. / 數(삭) : 자주. / 播馨(파형) : 향기를 뿌리다.
* 女姸(여연) : 여성이 예쁘다. / 男俊(남준) : 남성이 멋지다. / 童還秀(동환수) : 아이들이 또 수려하다.
* 誦潔(송결) : 낭송이 깨끗하다. / 簫淸(소청) : 퉁소(소리)가 맑다. / 舞亦靈(무역령) : 춤 또한 영묘하다.
* 情與酒深(정여주심) : 정이 술과 더불어 깊다. / 無剩恨(무잉한) : 남은 한스러움이 없다.
* 能知(능지) : ~을 알 수 있다. / 雅會(아회) : 아회, 고아한 모임. / 永年(영년) : 영원, 오랜 세월. / 靑(청) : 푸르다.[번역]
심산서옥 시뜨락에서 감회가 있어

심산 서옥에 시뜨락이 있어
원근과 망한 관계없이 다투어 모습 보였는데
하늘은 속세 먼지 싫어하여 가끔 비를 뿌렸고
꽃들은 좋은 날 기뻐하여 자주 향기를 뿌렸지
여성과 남성 예쁘고 멋졌는데 아이들도 수려했고
낭송과 퉁소 깨끗하고 맑았는데 춤 또한 영묘했네
정이 술과 더불어 깊어 남은 한스러움 없었음에
고아한 모임이 영원히 푸를 것임을 알 수 있었네

[시작노트]
밝히기가 좀 쑥스럽지만 지금까지 필자의 이름으로 간행된 저서와 역서는 도합 40권이 넘는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출판기념회를 열어본 적이 없다. 출판을 기념해야 할 정도로 비중이 큰 책이 없기도 하였지만, 필자가 쓰거나 번역한 책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일반인들은 평생토록 거의 들추어볼 필요도 없는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필자의 한 벗은 필자의 이런 상황을 두고 “전형적인 인문학의 비애”라는 말로 필자를 위로하고는 했지만, 필자는 기실 벗이 언급한 그 비애라는 말에는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이 책을 내는 뜻이 꼭 많이 팔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면, 전문 서적이라는 말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필자가 지은 책 가운데 그나마 대중성이 있는 책으로는 작년에 출간한 『한시로 만나는 한국 현대시』를 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쉰 명이 넘는 시인의 현대시를 한역(漢譯)하고 그 원시와 한역시에 대한 소감 등을 담아 집필한 칼럼 모음집이어서, 대중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하였지만, 지금까지 1천 권이 조금 넘게 소화되었을 뿐이니 역시 대중성과는 거리가 상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또 역자가 발표한 몇 권의 한시집도 나름대로 대중성이 있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한시인의 저변이 워낙 빈약한 탓에 대중성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테니, 나머지 책들이야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그런데 그런 필자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가 터졌다. 필자가 지금까지 지은 한시(漢詩)와 한역(漢譯)한 시는 물론 한글시까지 망라하여 그 가운데 스무 편이 넘는 작품을 골라 시낭송회를 진행한 문화 행사(?)가 지난 4월 말경에 포항에서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시낭송회가 개최된 장소가 필자의 동생 자택 뜰이고, 포항시낭송회의 회장이 필자의 제수씨이기 때문에, 시낭송회가 좀은 특별한 가족 행사였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역자는 이런 말로 정말 여러 날을 고생한 시낭송회 관계자 여러분들의 그 노고와 열정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번 시낭송회는 필자의 동생 내외가 포항시낭송회 관계자 분들과 함께, 여태 출판기념회 한 번 열지 못한 필자에게 그 어떤 출판기념회와도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었기에, 필자에게는 정말 잊지 못할 가슴 벅찬 행사가 아닐 수 없었다.

포항시낭송회의 많은 회원분들이 오래도록 낭송회를 준비하는 동안 필자가 한 일은 사실상 거의 없었다. 전혀 한시 전문가가 아닌 시낭송회의 멤버들이 한시를 외우고 그 역시(譯詩)나 원시(原詩)까지 외우는 일이 어찌 고통스럽지 않았을까만, 여러 회원들이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그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한 몸이 된 듯 행사를 성공적으로 진행시킨 것은 차라리 기적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날의 감동이 어찌 비에 젖은 황토 위의 발자국처럼 각인되었다가 금방 사라질 뿐이겠는가!이제 시의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제1연은 시낭송회가 개최된 장소를 먼저 적고 시낭송회의 명칭인 “시뜨락”을 한역하여 낭송회의 주최를 밝히는 한편, 많은 사람들이 참관한 성대한 행사였음을 사실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제2연은 행사 당일의 좀은 특별했던 날씨와 행사 개최 장소의 풍경을 개략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제3연의 윗구[出句]는 행사 진행의 주체인 시낭송회의 멤버들 및 초대받아 시 낭송을 진행해주신 분들과 초청 공연을 진행해주신 분은 물론 게스트 격으로 출연한 두 명의 어린이까지 뭉뚱그려 칭한 것이고, 아랫구[對句]는 모든 낭송인들이 행한 ‘낭송’과 초대된 분들의 ‘대금 연주’와 ‘전통춤 공연’을 개략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참가 인원도 다양하고 행사도 워낙 다채로웠던 탓에 짧은 시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욕심을 내다 보니, 결국 밋밋한 나열이 되고 말아 시적 긴장감이 얼마간 떨어지게 된 것은, 이 연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4연은 술도 깊고 정도 깊었던 심산서옥 서실에서 진행된 뒷풀이 이야기 끝에, 필자의 덕담 한 마디를 슬쩍 끼워 넣은 것이다.

시는 이렇게 무엇인가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지기도 한다. 이런 시가 그리 재미는 없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서정시와는 달리, 어떤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적어둔 비망기(備忘記)와 같은 성격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성은 여전히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옛날 중국 당(唐)나라 안사(安史)의 난 때에, 여러 층차의 슬픈 현실과 아픈 심사 등을, 사실적이지만 비장하고 슬프지만 아름답게 노래한 두보(杜甫)의 시를 시사(詩史:시로 쓴 역사)로 칭하는 뜻을 우리는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시가 어찌 단순히 내심의 표백(表白)에만 그칠 뿐이겠는가!

모든 기록은 역사가 된다. 우리가 무시로 적게 되는 몇 줄의 카톡 글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 또한 몸에 흔적을 남기면서 나이테를 역사로 긋게 되니, 도대체 역사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그리고 필자의 이 보잘것없는 시와 칼럼은 전적으로 필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필자의 어설픈 시들을 위해 애써준 여러분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뜻을 담은 것이므로, 편한 마음으로 받아주시면 더없이 감사하겠다. 누구나 인정하듯 인연의 강은 유장(悠長)하다. 그러므로 또 언제 어디서 하나의 물줄기로 서로 만날 날을 고대해 본다.
오늘 소개한 필자의 이 시는 칠언율시(七言律詩)로 그 압운자가 ‘庭(정)’, ‘形(형)’, ‘馨(형)’, ‘靈(영)’, ‘靑(청)’이다.

2023. 6. 6.<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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