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동상, 그림이 된 내장…상식을 깨뜨린 전시

아라리오갤러리 백정기·박웅규 개인전

동상을 안테나 삼아 소리 송출
"의미·상징 없애고 물질성에 초점"
박웅규는 '동물 내장'에서 영감
붓과 먹으로 섬세한 표현
'밤만 되면 동상이 깨어나 움직이고, 말을 한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학교 괴담'이다. 이런 괴담의 기저엔 '조각은 원래 가만히 고정돼있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는 백정기 작가(42)의 개인전에선 이런 학교 괴담 같은 일이 벌어진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라토너 손기정, 전태일 열사 등 실제 동상을 본따 만든 작품 사이로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첼로 연주와 함께 들려온다.자세히 보면 작품 밑에 송신기가 있다. 미리 녹음해놓은 파일을 송신기를 통해 틀고, 금속 캐스팅으로 만든 작품을 안테나 삼아 전시장 한쪽 구석에 놓인 라디오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마치 동상이 말하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백 작가가 작품 제목을 '능동적인 조각'(2023)으로 정한 이유다.
백 작가는 이 작업을 2011년부터 해왔다. 처음엔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상들을 수신 안테나 삼아서 라디오 주파수를 감지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공원 한가운데 있는 동상, 폐교 안에 버려진 동상…. 실제 장소에 있는 동상을 갖고 만들다보니 경찰이 오거나, 민원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상식을 깨기 위해 꾸준히 작업을 해왔다. 백 작가는 "일반적으로 동상은 어떤 상징과 맥락을 담고 있는데, 그런 이미지가 아닌 재료의 물질성에 주목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같은 곳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동양화가 박웅규 작가(36)도 마찬가지다. 흔히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지만, 그는 반대로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그린다. 이번에 영감을 준 건 '순대'였다. 그는 "평소 동물 창자를 잘 먹지 않아 순대를 싫어했는데, 어느날 순대를 자르는 행위가 마치 소의 내장을 하늘에 바치는 의례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소의 내장을 화폭에 담았다. 신작 '더미 91~100'(2023) 연작 10점은 점, 선, 도형을 활용해 소의 내장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붓과 먹만을 사용한 세밀한 표현에 감탄이 나오는 동시에 기괴한 느낌이 든다. 박 작가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등 양극단에서 오는 모호한 감정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두 전시 모두 7월 1일까지 열린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