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흠 없는 연주보다는 '김도현의 연주' 들려드리고 싶어요"

피아니스트 김도현 인터뷰

차이콥스키 세미파이널 특별상
국제적 주목받는 신성 연주자
마포문화재단 'M아티스트' 발탁

13일 시작으로 올해 4차례 공연
"커리어보단 음악으로 기억되고파"
피아니스트 김도현이 지난 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이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2017년 스위스 방돔 프라이즈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21년 이탈리아 부소니 콩쿠르에서 준우승과 현대작품 최고 연주상을 차지하면서 세계무대에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한국인 피아니스트가 있다. 깊은 음악성과 탁월한 작품 해석으로 미래가 기대되는 신성(新星)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연주자 김도현(29)이다.

그의 남다른 연주력은 2019년 ‘세계 3대 콩쿠르’ 가운데 하나인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도 빛을 발했다. 세미 파이널 특별상을 거머쥔 그는 당시 콩쿠르 조직위원장이던 거장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특별 초청으로 협연 무대까지 오르면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국제적 주목을 받는 피아니스트 김도현이 올해 한국에서 4차례의 기획 공연으로 청중과 만난다. 마포문화재단의 ‘M 아티스트’로 발탁되면서다. M 아티스트는 마포문화재단이 올해 처음 도입한 상주 음악가 제도로 재능 있는 연주자에게 1년간 음악회를 직접 기획하도록 지원해준다.

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아름답다’ ‘좋다’ 같은 모호한 심상을 이끄는 것을 넘어 선율에 담긴 이야기까지 온전히 전할 수 있는 연주를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제 목표는 단순히 흠 없는 연주가 아니에요. 저만의 색깔이 명료히 드러나는 연주를 들려드리는 겁니다. ‘김도현의 연주’로 기억될 만한 음악으로요. 제겐 이 공연이 또 하나의 도전인 셈입니다.”
피아니스트 김도현이 지난 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이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피아노를 통해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선명히 표현해내겠단 의지는 그의 첫 리사이틀(13일) 레퍼토리에서도 엿볼 수 있다. 리스트가 슈베르트의 가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작품들과 시에서 영감을 받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 등 구체적 이야기를 내포한 곡들로 채워져 있어서다. “이 작품들은 가사 또는 시를 통해 선율의 흐름, 악상 등이 또렷이 드러나 있어요. 여기서 매력적인 건 같은 장면이라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연주자에 따라 감정과 표현, 음색이 천차만별이 된다는 겁니다. 그에서 오는 특별함을 청중과 함께 느껴보고 싶어요.”

마지막 리사이틀(12월 5일)의 레퍼토리는 포레와 쇼팽의 소품으로 구성됐다. 두 작곡가 모두 이후 사조인 인상주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섬세하면서도 미묘한 프랑스적 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두 음악가는 완전히 다른 호소력을 지니고 있어요.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포레와 출생지는 폴란드임에도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쇼팽의 음악을 함께 들었을 때 찾을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선이 있죠. 짧은 소품 여러 개를 배치해 개별 작곡가의 성격과 악상, 심상 등이 더 면밀히 살아날 수 있도록 했어요. 청중이 지루해할 틈이 없도록요.”
피아니스트 김도현이 지난 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이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김도현의 화려한 이력을 보노라면 청소년 시기부터 클래식 음악계의 주목을 받는 ‘음악 영재’의 길을 걸었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가 피아니스트로서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20대 중반 무렵이다. 여느 연주자보다 늦은 중학교 2학년 때 피아노 전공을 결심한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 주변에 워낙 역량이 출중한 동료들이 많아 피아니스트의 삶은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그랬던 그의 인생이 변화한 건 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거장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바바얀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천재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그의 레슨은 김도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선생님은 제가 친 음표 하나하나, 선율 하나하나를 전부 뜯어고치셨어요. 연주자로서 곡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셨죠. 그리고선 ‘지금 디테일을 잡아두지 않고, 피아노 연습에 네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 연주하는 게 더욱 힘들어질 거다'라고 경고하셨어요. 당시엔 퇴보할 수 있단 말이 너무나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때부터 종일 연습만 하면서 살았습니다. 음악에 파묻힌 사람처럼요.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꿈과 평범한 행복은 일부 포기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 계기였죠.”
피아니스트 김도현이 지난 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이후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마포문화재단 제공
국제무대에서 주목받은 시기가 남들보다 늦었다는 데서 오는 조급함은 없었을까. “전혀요. 좋은 연주자가 되는 것에 있어서 나이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조명받는 연주자가 있는 반면 연주 활동을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실력을 인정받는 연주자도 있죠. 60대가 다 되어서 진가가 알려진 바바얀 선생님처럼요. 그에 비하면 저는 아직 채워나가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아요. 제가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한다면 50대든 60대든 세상이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봐 주는 순간은 분명 온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피아니스트로서 김도현의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1월 뮌헨의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펠스너 아티스트와 전속 계약을 맺은 그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유럽 활동에 박차를 가한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커리어에 대한 욕심은 딱히 없어요. 유명 악단과 협연하거나 명문 공연장에 오르는 것은 제가 실력이 된다면 알아서 따라오는 것일 테니까요. 피아니스트로서 딱 하나를 바랄 수 있다면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아서 들을 만한 연주를 남기고 싶어요. 커리어가 아닌 음악으로 기억될 수 있는 연주자요. 피아니스트로서 그보다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요."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