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최고정치책임자(CPO)

최근 코로나 봉쇄령이 풀리자마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회장 등 미국 기업 CEO들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해 시장 공략에 나섰다. 미국 보수 진영에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정부의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자 국가 안보를 해치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왔다. 과거 미국 CEO들의 중국 방문은 문제될 게 없었지만 미·중 패권 전쟁이 날로 격화하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CEO들의 방중 자체만으로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시대가 됐다.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차질과 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 등은 세계 경제·안보 패러다임을 바꿔놨다. 1993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 후 30년간 지속됐던 세계화, 자유무역 시대는 막을 내렸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4월 말 새로운 워싱턴 컨센서스를 소개하며 “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 구조는 명확한 기둥을 가진 파르테논 신전이었지만 지금은 비틀어진 비정형 곡선으로 유명한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정치적·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경영 리스크도 커졌다. 이와 관련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기업 내에 기술, 재무, 인사 등 부문 최고책임자 외에 정치·외교 분야 최고책임자인 이른바 최고정치책임자(CPO·chief political officer)를 둬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관(對官) 부서를 두고 국내 정치 리스크를 관리해온 국내 대기업들이 이를 해외로 확장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지난해 미국 워싱턴DC 사무소를 개설한 LG그룹은 15년간 백악관에서 근무한 조 헤이긴 전 백악관 부(副)비서실장을 공동 대표로 영입했다. 삼성전자는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를 북미대외협력팀장(부사장)에 임명, 해외 네트워크 강화에 나섰다.

미·중 패권 전쟁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등으로 한국 기업들의 대외 경영 환경도 갈수록 안갯속이다. 최근 워싱턴 민·관은 중국에서 퇴출당한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한국 기업들이 채워서는 안 된다며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CPO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질 것 같다.

전설리 논설위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