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화가] 길거리 낙서에서 출발한 팝아트 선구자 키스 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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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앤디 워홀과 함께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키스 해링(1958~1990)의 초기 무대는 길거리였다. 1978년 뉴욕 시각예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지하철, 클럽 등을 돌아다니며 벽화를 그렸다.
굵고 단순한 윤곽선, 만화를 연상시키는 표현 기법, 눈길을 사로잡는 원색….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해링의 벽화는 뉴욕 시민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1982년 해링을 눈여겨본 토니 샤프라지 갤러리가 그의 개인전을 열면서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해링이 미술계에 남긴 가장 큰 성과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고급문화’와 ‘하위문화’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길거리 벽화에서 시작한 그림이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갤러리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자신의 작품을 갤러리 밖으로 꺼내 티셔츠, 장난감, 포스터, 벽화 등으로 제작했다. 갤러리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또다시 고급·하위문화의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성소수자였던 해링은 에이즈에 걸려 32세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더브로드 미술관은 해링의 대규모 회고전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을 열었다. 오는 10월 8일까지 해링의 작품 120점을 선보인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