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놓쳐 홧김에 만든 곡이 화제…"현대음악계 '싸이' 될래요"

[음악가 사람들] '지하철 도착송' 만든 이재준씨
"빰빠빰빠밤~ "

지하철을 애용하는 시민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멜로디. 쩌렁쩌렁한 트럼펫 선율을 들으면 누구나 '지금 열차가 도착 중'임을 알 수 있다. 가뜩이나 바쁜 현대인의 마음을 더욱 다급하게 하는 이 선율을 토대로 작곡한 짧은 음악이 최근 SNS에서 화제가 됐다. 이른바 '지하철이 오지 않아 분노하는 음악'이다.

서울대 국악과 작곡전공 이재준씨가 만든 지하철이 오지 않아 분노하는 음악.

이 곡은 서울대 국악 작곡과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이재준 씨(27)가 지난 5월 만들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의 문화예술 온라인 플랫폼 아르떼와 전화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음악으로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대학원생'이라고 소개했다. Z세대 특유의 발랄함으로 가득한 그는 일찍부터 국악 작곡을 전공해온 인물. 국립국악중·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국악과 작곡 전공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평소 서울 지하철 3호선을 자주 이용해요. 원흥역에 갈 일이 많아 대화행 열차를 타야 하는데 구파발행 열차랑 번갈아 오더라고요. 얼마 전 3호선 대화행 열차를 타기 위해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 올라갔지만, 눈앞에서 스크린도어가 닫혔어요.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오르더라고요. 대화행 열차는 다음다음에 오는데…(웃음). 그때 지하철이 들어오는 음악을 패러디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곡하게 됐습니다"며칠 뒤 그는 카페에서 1시간 30분 만에 20초짜리 짧은 곡을 만들고 영상을 덧붙여 개인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기대치 않게 반응은 뜨거웠다. 첫날 조회수가 5000회 정도 나왔다. 며칠 뒤 '알고리즘의 마법'이 작동한걸까. 하루에 몇만회씩 급증하며 SNS에서 화제의 영상이 됐다. 현재 63만명 이상이 이 영상을 봤다.

그는 평소에도 말장난이나 이른바 '아재개그', 패러디를 즐긴다고. 이러한 주제로 작곡해 SNS에 꾸준히 올려왔다. 특히, '분노'라는 감정은 그가 즐겨 활용하는 소재다.

"분노를 웃음으로 승화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현대사회가 '혐오 사회'라고 하잖아요. 싫은 것도 많고, 세대·계층·성별 등으로 갈라치기는 분위기도 있고요. 대표적으로 출근길의 지하철은 누구나 짜증이 나죠. 저는 해외 스탠드업 코미디 프로그램을 즐겨보는데, 거기서는 모두가 서로를 욕하면서 결국 웃잖아요. 웃음으로 승화하는 분노가 우리의 감정을 풀어준다고 생각해요."


그는 지난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주최하는 이음 음악제에서도 파격적인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신라면 협주곡'이 그 주인공이다. 이음 음악제는 10여 명의 작곡가에게 3분 내외의 창작 작품을 위촉해 공연을 펼치는 창작음악제다. 악단의 위촉을 받은 그는 무대에서 라면을 끓이는 퍼포먼스와 농심 신라면 광고의 주제가를 활용해 곡을 만들었다. 진지한 공연장에 엄숙한 국악관현악단, 이 가운데 라면을 끓이는 협연자의 모습은 이질적이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라면 협주곡은 농심에서 저작권 허락도 받고, 라면 협찬까지 해주셨어요. 국악에서는 억세고 강한 화성을 많이 써요. 신라면 협주곡도 중간 부분 클라이막스를 보면 난해한 음들이 나와요. 물이 끓는 걸 표현하려면 시끄러운 음이 나올 수 있잖아요. 이런 음악을 쓸 수밖에 없는 주제라면 관객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지난해 9월 국립극장에서 진행된 이음음악제에서 이재준씨의 신라면 협주곡이 연주되고 있다. 사진=국립국악관현악단 유튜브 캡쳐.

그는 대학교 2학년때부터 자신의 작품에 패러디나 유머 코드를 넣기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 학교 수업에서 '혼돈의 서울대 입구'라는 곡을 쓴 적이 있어요. 악기 편성이나 형식도 정해져 있는 수업 과제곡이었는데, 혼날 거를 각오하고 쓴 거죠. 서울대가 수업 가는 길이 정말 험하거든요. 강의실로 가는 버스가 안 와서 중얼거리는 걸 음악으로 표현했죠. 대놓고 웃기려고 쓴 곡인데 교수님께서 혼내지 않고 좋게 보셨어요. (교수님과) 면담을 했는데 교수님이 저보고 '싸이처럼 돼라'고 했어요. 싸이는 본인이 B급 정서인 걸 알잖아요. 그런데 퍼포먼스는 A급처럼 해요. 공연 퀄리티, 실력, 마음가짐 모두요. 국악판이 보수적이지만 교수님은 네가 잘할 수 있는 유머를 가져가라고 응원해 주셨어요. 그때부터 재밌는 곡을 썼어요. "

그렇다고 그의 목표가 오직 재미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작곡가로서 현대음악 작곡가인 동시에 국악을 전공해왔다. 모두 음악 중에서도 대중과는 거리가 있는 장르다. 그는 음악적인 형식과 기교를 갖춘 정통 음악에 누구나 공감 가거나 재밌는 주제를 더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순수음악의 매력을 알게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해온 음악은 진지하고 기교적이에요. 저는 이런 음악을 사랑하지만, 대중과 멀어지는 것이 항상 안타까웠고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에게 음악의 매력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현대음악도 그 주제를 완전히 일상적인 것으로 하게 되면, 아무리 듣기 싫은 불협화음이 들려도, 박수조차 칠 수 없는 괴상한 리듬이 나와도 대중이 쉽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작곡가는 자신의 세상을 음악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평소에 하는 웃기고 이상한 생각을 음악을 통해 들려주고 싶고, 많은 사람이 같이 웃고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