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만큼 치열한 여론전…가스관·바흐무트 이어 댐폭파 공방

러, 국제사회에 '서방 배후의 우크라 테러' 프레임 강변
우크라는 '민간 피해' 강조하며 서방 무기 지원 호소
작년 가스관 폭발에 이어 바흐무트 격전, 최근 댐 폭파에 이르기까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각종 중요한 사안에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여론전이 난무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국제사회 여론을 각자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려는 목적이지만, 때로는 지나친 프로파간다로 인해 실제 전황과는 동떨어진 방향으로 '팩트'마저 왜곡되는 사례가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6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노바 카호우카 댐이 파괴된 직후 양국은 서로를 폭파의 배후로 지목하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외무부 성명을 통해 댐 폭파를 '테러 행위'로 규정한 뒤 민간인 재난 우려를 강조하며 국제적인 이슈화를 시도했다. 유엔 안보리에는 긴급회의 소집을 공식 요청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러시아 테러 문제를 이사회 회의 안건으로 상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반면 이를 "우크라이나 측의 고의적인 사보타주(비밀파괴공작)"이라고 주장했다.

현지 관영 통신은 카호우카 댐 폭발로 헤르손 주민 2만2천명이 홍수 위험에 처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카호우카 댐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 모두에 전략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서방 또한 섣불리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전쟁과 관련된 여론은 군부대 사기는 물론 국내 정치적 지형도와 맞닿은 문제여서 양국 모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대반격 움직임이 가시화하면서 국제사회 주목도가 높아진 가운데, 양국은 기존의 레토릭을 더욱 노골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러시아는 서방을 '악마화'하고 배후로 지목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내외 적대심을 키워 전쟁 지지론을 유지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이와 달리 우크라이나의 경우 민간 피해와 항전 의지를 강조해 미국과 유럽의 군사 지원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에도 양국은 러시아의 최격전지 바흐무트 장악과 관련해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며 여론전을 펼쳤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바흐무트가 우크라이나 수중에 없다고 밝혔다가, 뒤늦게 "점령된 상태가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해 F-16 전투기 등 최신 무기 지원을 호소하던 시점이었다.

반면 러시아는 '바흐무트 점령'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의 독일 베를린 점령에 비유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특히 러시아는 작년 9월 노르트스트림 해저가스관 폭발 당시 연일 미국을 배후로 지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소집까지 요청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가스관 폭발 사고가 '서방 배후'에 따른 국제적 테러로 규정하는 프레임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후방에서 지원해온 미국과 유럽에 견제구를 날린 의도로 분석된다.

작년 10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자국 흑해함대를 공격했다며 이를 곡물 수출 협정 참여 중단의 빌미로 사용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이런 방식의 여론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초 크렘린궁 드론 공격 직후 사건을 러시아의 자작극으로 몰아갔다.

작년 흑해함대 공격도 러시아가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정보당국은 크렘린궁 공격이 우크라이나 보안군의 비밀작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대공세를 격퇴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에도 우크라이나는 '가짜뉴스'라고 일축했으나, 국제사회에서는 대반격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