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는 편견을 극복하라고 하면서 정작 자기는 못해"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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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경영학계가 특출나게 잘하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신조어 만들기다. <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는 그런 신조어 중 하나인 ‘DEI’에 대해 말한다.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의 영어 앞 글자를 모은 말이다.
엘라 F. 워싱턴 지음
이상원 옮김
갈매나무
332쪽|2만1000원
쉽게 말하면 흑인 직원, 여성 직원, 장애를 가진 직원 등이 소외되지 않고 조화롭게 지내는 기업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미국에선 중요한 이슈로 꼽힌다. 맥킨지 같은 컨설팅기업, 하버드비즈니스리뷰 같은 경영잡지가 다룬다. 기업은 DEI 프로그램이나 부서를 만들고 있다. 저자 엘라 F. 워싱턴은 미국 조지타운대 맥도우 비즈니스스쿨 교수다. 조직 심리학자이며, DEI를 전문으로 컨설팅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 실제로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책은 사례집에 가깝다. 저자는 슬랙, 아이오라 헬스, PwC 컨설팅, 모스 애덤스, 엉클 니어리스트, 베스트바이, 인포시스 등 9개 기업의 모범 사례를 들여다보고 교훈을 끌어낸다.
나이키는 오히려 나쁜 사례로 꼽힌다. 표리부동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나이키는 DEI를 광고 단계에서 잘 활용했다. 인종, 성별과 관련한 편견에 굴복하지 말라는 ‘그냥 해 봐(Just Do It)’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동성애자에 후천성 면역 결핍증(AIDS)에 걸린 선수, 휠체어 농구선수, 권투나 스케이드보드 같은 스포츠에서 성공한 아랍 여성 등을 광고 모델로 기용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동남아에서의 최저 임금 미지급과 아동 노동이 문제가 됐고, 2003년에는 관리자들이 흑인 고객과 직원에게 인종차별적 욕설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760만달러를 배상하는 판결을 받기도 했다. 2018년에는 여성 임금 불평등과 성희롱을 용인해 왔다며 소송을 당했다.
저자는 “내부와 외부의 DEI 노력이 조화되어야 한다”며 “그 조화는 위에서 내려오는 동시에 아래에서 올라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모범 사례로 꼽은 기업용 메신저 회사인 슬랙은 2020년 5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흑인과 유색 인종 직원을 대상으로 사내 성명을 내고 공감과 애도를 표했다. 심리적으로 충격받은 직원들은 ‘감정 휴가’도 보내줬다. 엉클 니어리스트는 미국 위스키 산업에 지대한 공을 세운 흑인 노예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신생 위스키 회사다.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도 흑인 여성이다. 그렇다고 흑인 위주로만 기업을 운영하지 않는다. 전 직원의 50%가 여성이고 흑인, 라틴계, 성소수자 등 다양한 구성을 자랑한다.
CEO 폰 위즈는 “엉클 니어리스트가 짐 빔, 잭 다니엘스, 조니 워커 등 150년 역사의 브랜드와 나란히 놓이도록 하고 싶었다”며 “다양성을 제한한다면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고 말한다.
인도에서 시작해 50개 이상의 국가에 26만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인포시스는 전문성이 중요한 기술회사지만, 4년제 졸업생이 아닌 지역 커뮤니티 칼리지 인력을 적극 채용하고 있다. 회장 라비 쿠마르는 다양한 고객층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다양한 인력과 함께 제품을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봤다. 사례 분석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분석이 체계적이거나 깊이가 있지는 않다. DEI가 회사의 성과와 성장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실제로 기업에서 DEI를 담당하는 사람이 읽는다면 공감하고 도움을 받을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