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 조리 로봇이?…NRA 쇼에서 본 외식 산업의 미래 [긱스]

전세계 정보기술(IT)·가전 기업이 한자리에 모이는 CES(세계 가전 박람회)가 있다면 외식·푸드테크 기업엔 NRA(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 쇼가 있습니다. 코카콜라, 맥도날드부터 우버이츠, 비욘드미트까지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혁신 기술과 전략을 엿볼 기회입니다. 지난달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NRA쇼에 참가한 햄버거 조리로봇 기업 에이아이의 황건필 대표가 한경 긱스(Geeks)에 최신 푸드테크 기술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지난 5월 20~23일 미국 시카고 매코믹플레이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외식박람회 NRA 쇼에 2100여개 전시 업체, 5만여명의 관람객이 모여들었다. / 사진=에니아이
세계 최대 외식 박람회 NRA(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 쇼가 현지시간으로 지난 5월 20일부터 23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열렸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외식 박람회가 열린 시카고의 매코믹 플레이스는 전시 공간만 풋볼 경기장 11개를 합친 규모로 미국 내에서도 가장 큰 컨벤션 중 하나다.NRA쇼는 국내에는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매해 2100여개 전시 업체, 5만여명의 관람객이 모여든다. 식음료, 주방기기, 푸드테크 등 외식업계 최신 동향을 공유하는 자리로 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행사다. 코카콜라, 우버이츠, 비욘드미트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매해 산업 곳곳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혁신을 선보이며 NRA 쇼를 통해 업계에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두 번째로 열린 올해 행사의 키워드는 단연 자동화였다. 조리로봇, 세척로봇, 서빙로봇까지 식당 안팎에서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자동화 기술을 가진 업체들이 주목받았다. 기술이 외식업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요소가 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팬데믹이 덮친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위기에 처한 외식산업을 기술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인력난·근무환경 개선하는 조리로봇


외식업계는 미국에서 팬데믹 기간 극심한 인력난을 경험한 업종 중 하나다. 셧다운 때는 매장을 운영할 수 없어 직원을 내보내야 했다. 거리두기가 완화되었을 땐 기존 서비스 인력이 돌아오지 않아 매장을 운영하는 업주는 곤욕을 치렀다.최근 전미 레스토랑 협회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외식업 종사자들은 업계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직원 채용을 꼽았다. 매출과 고용지수가 회복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약 16만 5000명의 인력 부족이 존재한다고 발표했다. 업주들은 직원들의 근속 기간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직원들은 근무 환경이나 처우가 불만족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프랜차이즈들은 팬데믹 이후 외식산업에 닥쳐올 변화를 일찍이 감지하고 자동화 솔루션을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미국 전역에 350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화이트 캐슬(White Castle)은 2020년 처음으로 감자튀김 조리 로봇을 테스트하고 100개 매장에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유명 멕시칸 프랜차이즈 치폴레(Chipotle)는 2022년 초 또띠아 칩을 만드는 인공지능(AI) 조리 로봇 파일럿 테스트 후 매장 별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혁신상 거머쥔 AI·로봇 기술기업


NRA 쇼에서 매해 가장 혁신적인 제품을 선정하는 ‘키친 이노베이션 어워즈’는 AI와 로봇 기술이 결합된 주방 자동화 솔루션 제품들이 대거 수상했다. 키친 이노베이션 어워즈는 식품 서비스 산업 내에서 △자동화 △효율성 △안전성 △지속 가능성을 향상시키는 미래 지향적인 기술 제품에 수여된다.올해는 식당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인력난, 인건비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효율성 및 생산성 향상을 통해 근무 환경이 열악한 주방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제품들이 눈에 띄었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프레시테이스트(PreciTaste)는 머신 러닝을 이용한 AI 주방 관리 시스템으로 수요 예측 및 실시간 재고 모니터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방 직원들이 언제 식자재를 주문해야 하는지, 조리할 양과 조리 시점 등을 알려줘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매장 효율성을 높인다.
지난 5월 20~23일 미국 시카고 맥코믹플레이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외식박람회 NRA 쇼에 참가한 에이아니 직원들이 햄버거 조리로봇 '알파 그릴'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
필자의 회사인 에니아이(Aniai)도 햄버거 조리 로봇 ‘알파 그릴’로 혁신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로봇 팔을 이용하는 기존 조리 로봇들과는 달리 모듈화 디자인으로 조리 과정을 최적화하고 인력난 해소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행사에서 만난 외식업 전문가들은 비즈니스를 쉽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퀵서비스 레스토랑(QSR)을 대표하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합리적인 투자 비용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홀과 주방의 운영을 간소화하는 동시에 이익률을 높일 수 있는 테크 기술 도입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미국에만 400여개 매장을 갖고 있는 햄버거 브랜드의 최고 경영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미국 전역에서 겪고 있는 인력난과 인건비 문제에 대해 크게 공감하고 일찍부터 새로운 기술을 통해 레스토랑의 디지털 전환을 준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새로운 장비 도입을 위해 상대적으로 많은 절차가 필요한 미국에서 빠른 속도로 로봇 테스트 일정을 요구하는 모습에 디지털 전환 기술이 얼마나 강하게 필요로 하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지난 5월 20~23일 미국 시카고 맥코믹플레이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외식박람회 NRA 쇼에서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가 미국 외식업 바이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조리로봇 도입하는 주유소·편의점


레스토랑과 같은 전통적인 외식산업 이외의 산업분야에서 푸드테크 기술 도입을 통한 자동화 준비도 흥미로웠다.

미 공군은 2021년부터 주방 자동화에 투자해왔다. 실제 캘리포니아 페어필드에 있는 공군 기지의 조리 시설에서 샐러드 로봇을 도입해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주방에 로봇을 도입하면 노동 집약적인 업무를 줄일 수 있고 장병들이 본연의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정교한 수요 예측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고, 철저한 위생관리가 가능해 국가적 차원에서 조리 로봇 도입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

전기차 보급과 함께 가까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미국 편의점의 동향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에는 보통 주유소와 편의점이 함께 있다. 기존 주유소가 전기차 충전소로 전환되면서 소비자의 체류 시간이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햄버거, 피자, 핫도그 등 패스트푸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편의점 본사에선 매출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다양한 메뉴와 품질 관리, 조리 시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로봇과 AI 기술 발달로 외식산업에서 그동안 풀고 싶어 했던 인력난, 일정한 품질 유지, 신선한 재료 유지, 음식물 쓰레기 절감 등 다양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풀어내는 솔루션들이 나오고 있다. 내년 외식 박람회는 또 어떤 기술들이 나올지 기대되며 이러한 혁신을 통해 향후 5년이 어떻게 바뀔지 매우 기대된다.

필자의 회사인 ‘에니아이’가 추구하는 ‘언제 어디서든 맛있고 품질 높은 음식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미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니 한경 긱스(Geeks) 독자들도 앞으로 열리는 외식업의 변화와 더 맛있어질 음식들을 즐겁게 즐기길 바란다.
지난 5월 20~23일 미국 시카고 맥코믹플레이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외식박람회 NRA 쇼

황건필 에니아이 대표 ㅣ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에서 인공지능, 반도체, 인지시스템 분야 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AIST에서 공부하는 동안, 로봇, 스마트 공장, 그리고 자율 주행 차량에 사용되는 3D 영상 센서를 위한 혼합 신호 회로와 생체에서 영감을 받은 신경망의 설계를 연구했다. 2013년 휴대용 뇌 영상 시스템을 개발한 생명공학 스타트업 오비이랩을 공동 설립했으며, 2020년 햄버거 조리로봇 기업 에니아이를 공동 창업하고 CEO를 맡고 있다. 삼성 휴먼테크 금상, 퀄컴 이노베이션 어워드 등을 수상했으며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 장학생에 3년 연속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