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반도체 기업, 中 합자사 설립…美 수출 통제 빈틈 노리나 [강현우의 중국주식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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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용 차세대 반도체 생산스위스에 본사를 둔 반도체 기업 ST마이크로가 중국 싼안광전과 충칭에 반도체 생산 합자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중국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미국의 시도에 대응해 중국이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미국 수출통제 기준에 걸리지 않는 범용 반도체 확대
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ST마이크로와 중국 반도체 업체 싼안광전은 충칭에 32억달러(약 4조1800억원)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고 전날 발표했다. 신설 공장은 차세대 반도체로 꼽히는 탄화실리콘(Sic) 소재의 반도체를 생산한다. SiC로 제조한 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고온·고전압 환경에서 잘 버티는 특성을 갖고 있다. SiC 반도체는 주로 전기자동차, 태양광·풍력 발전 부문에 쓰인다. 중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산업들이다. 중국 내 SiC 반도체 생산 설비를 증설하는 것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수출통제를 완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꼽힌다. 미국은 SiC와 함께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꼽히는 산화갈륨을 지난해 8월 미국 정부의 승인 없이는 중국에 팔 수 없는 수출통제 대상에 올렸다. SiC는 산화갈륨에 비해 상용화가 진척된 기술이다. 중국은 산화갈륨 도입 제한으로 첨단 반도체 개발에는 차질을 빚게 됐다. 하지만 범용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면서 기초 역량을 다지고 시장 지배력을 확대한다는 전략에는 SiC 생산 설비 구축이 적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ST마이크로와 싼안광전의 신설 공장은 2025년 4분기부터 가동을 시작해 2028년 최대 생산 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투자 자금은 중국 정부의 지원금과 대출 등을 통해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신설 공장은 28㎚(나노미터·1억분의 1m)급 반도체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 역시 14㎚ 또는 그 이상의 고성능 반도체를 생산할 때 쓰이는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제한한 미국의 수출통제 범위 밖이다. 중국은 14㎚급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범용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싼안광전은 빛을 내는 반도체인 발광다이오드(LED) 부문에서 중국 시장점유율 30%가량을 확보하고 있는 1위 기업이다. LED 생산설비를 바탕으로 차세대 SiC 반도체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ST마이크로는 본사가 스위스에 있지만 최대주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기업들인 다국적 기업이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다. 장 마크 체리 ST마이크로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고객사 맞춤형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한 특화 공장을 설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ST마이크로는 지난 5일 미국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인 글로벌파운드리스와 프랑스에 75억유로(약 10조원) 규모의 공장을 짓기로 했으며, 프랑스 정부가 이 공장에 29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유럽도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이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