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사노바의 전설, 그녀가 노래하면 이파네마의 파도가 부서졌다

6월 5일 세상 떠난 아스트루 질베르투
브라질 출신 보사노바 가수로 83세 별세

통역 도와주러 주앙 질베르투 따라 간 뉴욕 스튜디오서
우연히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녹음 후 월드스타로

화려한 데뷔곡 후 16개 정규 앨범과 2개의 라이브 앨범
브라질 음악 세계화로 라틴 그래미상 평생공로상 수상
사진=게티이미지

둥글고 나긋한 목소리로 해변을 걷는 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Ipanema)’. 노래 전반엔 밝은 보사노바 리듬이 깔리지만, 가사엔 틈틈이 외로움이 묻어난다.

1964년 세상에 나온 이 노래는 500만장 앨범 판매를 기록했고, 프랭크 시내트라와 마돈나는 물론 냇 킹 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로부터 리메이크 됐다. 이 노래를 부른 브라질 보사노바의 전설, 아스트루 질베르투가 지난 6일(현지시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가족과 함께 살던 질베르투는 소화 불량을 호소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질베르투는 1940년 브라질 바이아주 사우바도르에서 태어났다. 보사노바를 발명했다는 평가를 받는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이 대부분의 곡을 쓴 앨범 ‘게츠/질베르투(Getz/Gilberto)’에 우연히 보컬로 참여하며 24세의 나이인 1964년 데뷔했다.

그의 남편은 유명 보사노바의 가수 주앙 질베르투다. 아스트루는 1963년 남편(당시엔 남자친구)이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스탠 게츠와 앨범 작업을 하는 동안 스튜디오 통역을 하러 뉴욕에 따라 갔다가 우연히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를 부르게 됐다. 이 노래가 담긴 싱글 앨범은 500만장 넘게 팔렸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해안가 지역인 이파네마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1960년대와 70년대 브라질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던 그녀는 16장의 앨범을 녹음했다. 퀸시 존스에서 조지 마이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했다. 10대 중반에 그녀는 보사노바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유명한 가수 나라 레아오와 유명 기타리스트 주앙 질베르투를 포함, '음악 클랜'이라고 묘사한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음악과 가까이 지냈다. 어머니의 집안은 모든 가족이 악기를 하나 이상 다룰 수 있을 만큼 음악을 즐겼다고. 앨범 녹음 후 주앙과 아스트루는 만난 지 몇 달 안된 채로 결혼했다.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의 영어 버전을 녹음하려 했을 때 질베르투는 수줍게 그녀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프로듀서였던 크리드 테일러가 "당장 곡을 완성하고 싶다"고 하자 질베르투는 "내가 영어로 노래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그는 전문적인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날 밤 그곳에 앉아 있던 유일한 희생자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는 단숨에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이 싱글 앨범은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했고, 3개의 그래미상을 석권했다. 재즈 아티스트가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의 영예를 얻은 첫 앨범이었다. (40여 년이 지난 후 두 번재 재즈 앨범은 허비 핸콕의 '리버: 조니 레터스'였다.) 정식 밴드나 가수가 아니었던 질베르투는 그래미상 쾌거에도 당시 120달러의 세션 비용밖에 못 받았다는 뒷이야기도 전해진다. 1965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식 앨범을 시작으로 솔로 생활을 시작했는데, 재즈 기타리스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과 팀을 이뤄 브라질 재즈의 표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언론들은 "질베르투의 속삭이는 목소리엔 진정한 아픔과 신비로움이 있다. 잃어버린 여름의 이미지를 소환한다"고 했다. 음악평론가 제임스 개빈은 "그녀가 노래하는 동안 파도가 부서지고 갈매기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쓰기도 했다.
1970년대에 그녀는 앨범 ‘Astrud Gilberto Now’(1972)와 ‘That Girl From Ipanema’(1977)을 위해 스스로 노래를 만들었다.
전설적인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와의 듀엣으로 자신의 작품인 ‘파 어웨이’를 수록해 평생 소원을 이루기도 했다. 총 16개의 정규 앨범과 2개의 라이브 앨범을 낸 그는 1996년 에이즈 퇴치를 위한 ‘레드핫+리우(Red Hot+Rio)’ 앨범에 참여해 가수 조지 마이클과 ‘데자피나두(Desafinado)’를 불러 또 한번 유명해졌다.

평탄한 삶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전 세계의 열광을 받으면서도 정작 고국인 브라질에서 단 한 차례만 공연했다. 브라질 평론가들로부터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정통 보사노바와 거리가 멀다는 게 이유였다. 데뷔 후 전성기를 달리던 1960년대 중반 그는 첫 남편 주앙과 이혼하고 스탄 게츠와 연인이 되기도 했다.
그는 노년의 대부분은 동물 학대에 반대하는 캠페인에 바쳤다. 화려한 데뷔곡을 발판으로 질베르투는 2002년 인터내셔널 라틴 음악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2008년에는 라틴 그래미상의 특별상 부문인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1964년 데뷔 직후 방송에 출연한 아스트루 질베르투가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를 노래하는 영상.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개막식. 지젤 번천의 캣워크에서 대중들이 함께 열창하는 영상.

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