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사표” MZ직원 탓한 사장에 돌직구… “문제는 당신” [백수전의 '테슬람이 간다']

‘경영의 신’과 테슬라
(1) 리더의 조건

일본 '경영의 신' 존경받는 이나모리 가즈오
27세 교세라 창업, 年매출 16조 대기업 일궈
"회사는 경영자에 달려, 철학이 있는가?" 질문
"확고한 비전과 투혼이 직원들 마음 사로잡아"

머스크 '20년 원대한 꿈' 직원·고객까지 공감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을 배우는 경영스쿨인 '세이와주쿠' 연찬회. 이나모리 회장은 젊은 경영자들의 애로를 듣고 상담해 주느라 초저녁에 시작한 연찬회가 밤 늦게까지 이어지기 일쑤였다. /사진=한경DB
늦은 밤 일본 교토의 한 선술집. 팔십이 넘은 머리 희끗희끗한 노인의 말에 젊은이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토 일대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30~40대 젊은 사업가들이었습니다. 대화의 주제도 기업 경영이 주류였습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한 사업가가 푸념하듯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빌딩이나 교량에 도료를 칠하는 도장(塗裝)업을 하는 영세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간에선 이 일을 ‘3D 업종’에 천한 직업으로 여깁니다. 젊은이들이 잘 오지도 않고 걸핏하면 이직합니다. 저도 ‘어차피 이런 업계인 것을’ 체념하곤 합니다. 사실 제가 원해서 한 사업도 아니고 가업을 이어받았습니다. 포기하자니 차입금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에게 긍지를 심어줄 수 있을까요”
이나모리 가즈오(1932~2022)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27세에 자본금 300만엔으로 세라믹 부품 벤처기업 교토세라믹을 창업해 연 매출 1조6000억엔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1984년 설립한 통신회사 다이닌덴덴은 현재 일본 2위의 이동통신사로 성장했다. 78세에 파산 위기에 몰린 일본항공(JAL)을 맡아 8개월 만에 2조엔이 넘는 부채를 청산하는 기적을 일궜다.
노인은 술잔을 내려놓았습니다. 잠시 이 사업가를 바라보더니 말문을 열었습니다.

“고작 도장업자라고 했는가. 100년 넘은 파리의 에펠탑이 꿈쩍도 하지 않은 건 녹슬지 않도록 매년 도장을 다시 하기 때문이네. 도장업은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야. 어쩔 수 없이 맡은 사업이라고? 그 마음가짐부터 바꿔야 해. 사장인 자네가 일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데 직원들이 어떻게 자부심을 느끼겠는가. 왜 그 일을 해야하는지 ‘대의명분’부터 세우게. ”

이에 젊은 사업가도 지지 않고 대꾸했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다들 책임감이 없고 변명하기 급급합니다. 직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비결을 알려주십시오”노인은 답했습니다. “비결이라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왕도가 없어. 마음을 다해 설득하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직원들에게 호소해야지. 그다음엔 누가 보든 말든, 자네부터 아침부터 밤까지 일에 열중하게. 그것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경영의 시작이네”
경남 통영에 있는 한 선박 블록 제작업체의 근로자가 용접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한경DB

‘경영의 신’ 이나모리 가즈오

젊은 사장을 상대로 아낌없이 조언을 한 이 노인은 누구일까요. 한국 CEO들이 가장 존경하는 경영자이자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은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창업자입니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그의 경영철학에 영감을 얻었습니다.이나모리는 1932년 가고시마의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1959년 27세에 자본금 300만엔을 들고 세라믹 부품 벤처기업 교토세라믹을 창업해 연 매출 1조6000억엔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1984년 거대 통신 독점회사 NTT(일본전신전화)에 맞서 다이니덴덴(현 KDDI)을 설립해 연 매출 5조엔 기업으로 키웠습니다. 현재 일본 2위의 이동통신사입니다.

이후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78세에 전격 경영에 복귀했습니다. 팔순 노장의 실력은 전혀 녹슬지 않았습니다. 파산 위기에 몰린 일본항공(JAL)을 맡아 회장 취임 8개월 만에 2조4000억엔의 부채를 청산하고 흑자 전환 시킵니다.
일본 교토에 있는 교세라 본사 전경. /사진=한경DB

이나모리가 밝힌 '경영 12개조'

“회사는 경영자의 그릇보다 커질 수 없다”
-이나모리 가즈오
이나모리는 회사가 성장할수록 경영자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타심을 들었습니다. “회사는 경영자의 그릇보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없다. 기업은 사람이 모인 집단이며 리더는 그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동기는 선(善)해야 하고 사심이 있어선 안 된다”

이나모리의 경영철학은 수많은 젊은 기업인들에게 용기를 심어줬습니다. 그가 생전에 밝힌 ‘경영 12개조’(이나모리 가즈오 『어떻게 회사는 강해지는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업의 목적과 의의를 명확히 한다.
2.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다. 직원들과 공유하라.
3. 강렬한 소망을 마음에 품는다.
4.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노력한다.
5. 매출은 최대로, 경비는 최소한으로 한다.
6. 가격 결정은 경영이다.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이다.
7. 경영은 강한 의지로 결정된다.
8. 불타오르는 투혼을 발휘하라.
9. 용기를 가지고 일한다. 비겁한 행동은 안 된다.
10. 항상 창조적으로 일한다. 끊임없이 개선하라.
11. 배려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일한다.
12.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꿈과 희망을 품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간다.


일론 머스크라는 '그릇'

지난 5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테슬라 건물 앞에 주차된 모델Y. /사진=AFP
21세기 글로벌 기업 경영을 거론할 때 애플에 이어 빼놓을 수 없는 회사가 있습니다. 2020년대 최대 ‘문제적 기업’ 테슬라입니다. 이 회사는 2020년 7월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자동차 기업 시가총액 1위에 올랐습니다.

도요타는 한 해 1000만대에 육박하는 차량을 파는 글로벌 1위 완성차 기업입니다. 그런데도 시가총액은 현재 3배 차입니다. 시장은 작년 130만대를 판 테슬라가 ‘미래 모빌리티 혁명’의 선두 주자임을 인정한 겁니다. 도요타는 지난 4월 뒤늦게 CEO를 바꾸고 전기차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설립 20년 차 신생기업 테슬라는 어떻게 거대 완성차 기업들의 롤 모델이 된 걸까요. 그 중심엔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있습니다. 종잡을 수 없고 때론 오만해 보이는 이 혁신가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범인(凡人)이 상상할 수 없는 ‘원대한 비전’입니다. 그 인물의 그릇 크기가 남다르다는 겁니다.

비전을 가진 인물은 많습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빅테크 기업 창업자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를 매혹하는 ‘물건’을 만들어 충성 팬을 끌어모은 경영자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이후 머스크가 유일합니다(최원석 『테슬라 쇼크』).
“테슬라의 궁극적인 목적은 태양광 전기 에너지 경제로의 신속한 전환을 돕는 것이다”
- 2006년 8월 『테슬라모터스 비밀 마스터플랜』 중
머스크가 2006년 공개한 테슬라 첫 장기 비전 ‘마스터플랜’의 세 번째 문장입니다. 당시 테슬라는 언론을 타고 약간 이름이 알려진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직원은 고작 100명. 그동안 제작한 차량은 20여대에 불과했습니다. 머스크가 마스터플랜을 내놓자 사내에선 모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냉소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에드워드 니더마이어 『루디크러스』).

직원들은 ‘운이 좋아서’ 회사가 상장하면 큰 몫을 챙길 거란 기대에 테슬라에 합류한 이들이 상당수였습니다. 머스크의 비전은 실리콘밸리의 작은 벤처가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원대했습니다.




“자네가 필요하다, 이 투쟁에 동참해달라”

“당신은 직원들을 똑바로 마주 보고 목표를 말하고 있는가”
-이나모리 가즈오
머스크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꿈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구를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첫 단계가 지구온난화의 원인 중 하나인 내연기관차의 전동화입니다. 그에게 이 미션은 한시바삐 달성되어야 합니다.

“테슬라는 지속가능한 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데 자네가 필요하다. 이 투쟁에 동참해달라” 머스크는 스탠퍼드 등 명문 대학에서 최고 성적을 낸 학생을 집중적으로 채용했습니다. 황당한 비전이었지만 열정적인 20대 젊은이들에게 머스크의 말은 마법처럼 먹혀들었습니다. 이나모리의 말처럼 경영자의 비전에 직원들이 똘똘 뭉친 겁니다.

그의 ‘스토리 메이킹’은 테슬라를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기업 중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테슬라에 들어온 인재들은 단순한 임무를 맡을 때조차 그것이 인류를 구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신이 기업 연구소가 아니라 괴짜들의 집합소나 실험실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미카엘 발랑탱 『테슬라 웨이』).




20년 한결같은 그 남자

머스크가 ‘완벽한 인간’이란 얘기는 아닙니다. 그에게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나모리는 경영자의 자질 중 인의(仁義)를 특히 강조했습니다. 리더는 인격 수양이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직원들을 거칠게 압박하고 툭하면 해고하는 머스크와는 거리가 있는 자질입니다.

그럼에도 이나모리의 ‘경영 12개조’를 다시 살펴봅니다. 지난 20년간 본인의 비전을 밀어붙인 우직한 남자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의 메시지는 때론 과장되긴 했지만 한결같았습니다. 돈만 바라는 홍보인지, 진심을 담은 소통인지 고객은 다 알기 마련입니다(최원석 『테슬라 쇼크』).

“테슬라는 결국 망할 것”이라며 비웃던 이들도 공장 바닥에서 자며 주당 120시간씩 일하는 머스크에게 기가 질렸습니다. 어느새 전 세계 많은 이들이 그의 꿈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어떤 새로운 비전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까요. 캐시 우드 ARK 인베스트먼트 CEO의 말마따나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 맨’에게 계속 기대를 거는 이유입니다.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있다면, 당신의 회사는 그 어떤 위기에도 지지 않을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 2편에 계속▶‘테슬람이 간다’는
2020년대 ‘모빌리티 혁명’을 이끌어갈 테슬라의 뒷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최고의 ‘비저너리 CEO’로 평가받는 일론 머스크도 큰 탐구 대상입니다. 국내외 테슬라 유튜버 및 트위터 사용자들의 소식과 이슈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면 매주 기사를 받아볼 수 있습니다.

백수전 기자 jerr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