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30회 대책에도 서비스산업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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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6위 韓, 서비스는 15위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한국 경제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했다. 노동 연금 교육 등 3대 구조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하나 강조한 게 있었다. 서비스산업 혁신이다. 조 명예교수는 “한국의 서비스산업은 정말 문제가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국 경제에서 서비스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70~80%고 제조업은 1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거론하며 “한국도 의료 법률 회계 등 고급 서비스를 국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비스수지 23년째 적자행진
정부 "10년 간 산업 정체 중"
이창용 한은 총재까지 걱정
기득권 보호하는 진입장벽 커
'7위 도약' 위해 규제 풀어야
임도원 경제부 차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총재는 최근 반도체 등 수출 부진, 그리고 그에 따른 무역적자 행진과 관련해 하나의 대안으로 “우리나라에서 서비스업을 수출할 게 엄청나게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개방형 병원을 도입한 태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의료 허브 국가들의 사례를 들었다.서비스산업은 ‘굴뚝 없는 공장’ ‘보이지 않는 무역’으로 불린다. 부가가치가 높고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선진국형 산업이다. 시장도 제조업보다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0~2019년 연평균 세계 무역 성장률은 서비스가 5.2%로 제조업 상품(2.5%)의 두 배를 넘었다. 이 때문에 국가 경제가 고도화될수록 서비스산업으로의 이행은 필수적이다.
한국은 어느덧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서비스산업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한국의 서비스 수출은 지난해 1302억달러로 세계 15위를 기록했다. 수출 6위인 제조업에 한참 못 미치는 위상이다. 서비스수지는 2000년 이후 매년 적자다. 지난해에는 -55억5000만달러로 전년(-52억9000만달러)보다 적자폭이 커졌다. 서비스산업 생산성은 2019년 기준 취업자당 63만9000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8만6000달러)보다 크게 낮다. “최근 10년간 서비스 경제로의 전환은 정체 중”이라는 게 정부 자체 진단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개선 여력이 있다는 뜻이다.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01년 이후 지금까지 30개가 넘는 서비스산업 대책을 내놨다. 문제는 대책마다 핵심을 비껴갔다는 것이다. 서비스산업은 대규모 생산시설 등이 필요 없는 대신 각종 면허나 인허가 등 규제의 진입장벽이 공고하다.
정부는 틈만 나면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를 부르짖었지만 기득권과 이익집단 등의 반발로 성과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투자개방형 병원 허용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추진했지만 결국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공공 의료’에 역행한다는 시민단체 등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한 결과다. 병원들은 채권조차 발행할 수 없다. 의대 정원은 18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다. 변호사와 다른 전문자격사 간 동업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예컨대 변호사와 의사가 함께 의료 전문 법무법인을 차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변호사업계가 ‘다른 직역의 하수인이 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어서다. 해외 관광으로 인한 여행수지 적자가 커지고 있는데도 내국인 여행객을 위한 숙박공유 허용은 답보 상태다. 기존 숙박업체들의 반발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국회는 기득권을 옹호하며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타다 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정부도 2019년 법안 심사 당시 “‘타다’와 택시 모두를 위한 법안”(김경욱 당시 국토교통부 2차관)이라며 국회를 거들고 나섰다. 2011년 서비스업 규제 완화 등을 담아 정부 입법으로 처음 발의된 서비스산업발전법은 12년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윤석열 정부도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서비스산업 발전을 외치고 있다. 세계 7위 서비스산업 강국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에 ‘서비스산업 혁신 전략’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규제 완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달 초부터 시행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재진 환자와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제한했다.
K팝이 세계를 휩쓸고 있듯이 이제는 ‘K의료’ ‘K관광’ ‘K로펌’ ‘K금융’이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K규제’부터 타파해야 한다. 태국 싱가포르보다 우수한 의료 인력과 인프라를 가진 한국이 의료허브 자리를 내줄 이유가 뭔가. 중앙은행 총재가 서비스산업 발전까지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이제 바뀔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