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향수에서 찾은 '생명의 비밀'

THE WALL STREET JOURNAL 서평

엘릭서(Elixir)

테레사 레빗 지음
하버드 유니버시티 프레스
320쪽│32.95 달러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밝히는 일은 과학자들의 오래된 관심사다. 19세기 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조향사 에두아르 로지에와 오귀스트 로랑은 ‘생명의 비밀’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냈다. 천연 재료와 인공적으로 합성한 재료로 만들어진 향수의 차이를 밝히기 위해 나선 그들의 실험은 후대 화학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최근 출간된 <엘릭서>는 프랑스를 강타한 묘약 ‘향수’의 역사를 파헤친 교양서다. 저자는 미시시피대 교수인 테레사 레빗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 전후로 향수가 문화생활에 미친 영향과 향수를 둘러싼 과학적 논쟁 과정을 설명한다.당초 향수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됐다. 단순한 미용 목적이 아니었다. 미생물과 바이러스가 발견되기 전, 감염의 유일한 징후는 악취였다. 향수로 냄새를 지우는 것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프랑스인들은 향수가 건강과 활력의 필수 공급원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에서의 ‘생명의 정수’가 향수에 남아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루이 14세의 궁전엔 향수 냄새가 진동했다. 혁명 이후 집권한 나폴레옹도 한 달에 향수를 60병씩 사용했다. 그는 향수를 물이나 와인에 희석해 마셨고, 심지어 발작을 일으킨 사람의 얼굴에 뿌리기도 했다.

향수와 관련한 논쟁은 과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나폴레옹이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은 1820년대, 두 청년이 만났다. 파리 중심가의 가장 오래된 향수 공장 ‘로지에 페레 에 피스’를 물려받은 조향사 로지에와 친구 로랑은 향수 가게 뒤편에 실험실을 차렸다. 로지에가 자연 추출물을 정제하면 로랑이 이를 결정으로 만들어 관찰하는 식이었다.두 청년은 자연물엔 인간이 만든 합성물과는 다른 특이한 생명력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의 목표는 향수의 자연적인 재료 속 ‘생명의 정수’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일이었다. 실제로 천연물인 레몬밤, 라벤더, 로즈메리를 넣어 만든 로지에의 대표 향수 ‘오 드 멜리스’는 진정제로 유명했고, ‘오 레제네라트리스’는 기억력 감퇴와 통풍 치료제로 널리 애용됐다.

학계는 그들의 이론을 철저히 외면했다. 근대 화학의 기틀을 세운 라부아지에가 이전의 연금술적 전통을 정교한 과학용어로 대체한 뒤였기 때문이다. 라부아지에 추종자들은 같은 화학 물질로 구성됐다면 생명체든 무생물이든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연물에 인공 화합물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주장은 미신일 뿐이었다. 공개적으로 조롱당하던 로랑은 결핵에 걸려 45세에 무일푼으로 세상을 떠났다.

로지에와 로랑을 믿어준 유일한 사람은 루이 파스퇴르였다. 미생물의 존재를 발견해 자연발생설을 무력화한 그 파스퇴르다. 자연발생설은 생명체가 무생물로부터 생겨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는 분자식이 화학적으로 동일하더라도 자연물과 인공 화합물 사이에 구조적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조향사들의 실험이 힌트를 제공한 셈이다. 현대 생화학자들은 여전히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을 찾고 있다.

정리=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