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中대사 초치…"내정간섭 강력 경고"

싱하이밍 '결례' 발언에 초치

'中 패배 베팅하면 후회' 발언에
박진 "대사 역할은 우호증진"

與 "이재명, 中 백댄서 자처" 공세
李 "경제·안보문제 할 얘기 했다"

中 "양국관계 위기, 우리 책임 아냐"
박진 외교부 장관이 9일 서울 당주동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센터 개소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외교부는 정부의 외교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9일 초치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싱 대사의 발언에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외교부는 이날 장호진 1차관이 싱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에 엄중 경고하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장 차관은 “주한 대사가 다수의 언론매체 앞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과 묵과할 수 없는 표현으로 우리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은 외교사절의 우호 관계 증진 임무를 규정한 비엔나협약과 외교 관례에 어긋날 뿐 아니라 우리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간섭에 해당할 수 있다”고 강력히 항의했다.싱 대사는 전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현재 중·한 관계가 많은 어려움에 부딪혔고, 그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며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주한 외국 대사가 제1 야당 대표를 만나 상대국의 외교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외교부 "中대사, 본분에 맞게 처신하라" 직격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9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해 “이번 언행은 상호 존중에 입각해 한·중 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는 양국 정부와 국민들의 바람에 심각하게 배치되는 것으로서 오히려 한·중 우호의 정신에 역행하고 양국 간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것”이라며 “외교사절의 본분에 벗어나지 않도록 처신해야 한다. 모든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교부가 ‘처신’ ‘책임’ 등 강한 표현을 쓰면서 주한대사를 비판한 것은 지난 8일 싱 대사의 발언이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에서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도 이날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립외교원, 통일연구원, 한국국방연구원 등 4개 국책연구기관이 개최한 학술회의에서 한·중 관계에 대해 “국가 간 관계는 상호 존중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는 또 “대한민국의 신장된 국력에 걸맞게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당당한 외교를 통해 건강한 한·중 관계를 만들어 나가겠다”며 “누가 우리의 생존과 안보를 위협하는 적인지, 그 적에 대항해 우리 편에 서 줄 나라는 어느 나라인지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 역시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외교 관례라는 게 있고 대사의 역할은 우호를 증진하는 것이지 오해를 확산하면 안 된다”고 싱 대사를 비판했다.

싱 대사가 국내 정치에 대한 내정간섭 성격의 발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선 주자 시절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을 써가며 반박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외교가에서는 싱 대사의 발언으로 인해 한·중 관계가 더욱 얼어붙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날 만찬 회동을 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정치권 관계자는 “주한 중국대사가 무례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 대표는 이를 듣고만 있었다”며 “이미 ‘결례’ 발언으로 유명한 싱 대사와 만찬 회동을 수락하고, 싱 대사의 발언을 유튜브로 30분간 생중계한 민주당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신각수 전 일본대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중국의 안하무인한 외교 행태가 일반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지만 일본에서는 주일 중국대사가 이런 발언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다”며 “지난 정부의 저자세 외교로 인해 중국이 한국에 유난히 강경한 태도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과 관련, “경제·안보 문제나 할 얘기는 충분히 했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싱 대사가) 단체여행(허용 국가 배제)에 대해 좀 형평성 차원에서 조기 해제 조치를 해달라는 것에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게 조금 특이했긴 했다”고 전했다. 논란보다는 회동 성과에 주목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된다.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중국과 불편한 관계를 자청하는 게 당당한 외교인가”라고 반박했다. 대변인은 “대(對)중국 수출 부진에 우리 기업들은 죽을 맛인데 정치적 사안으로 중국을 자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미국조차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데, 윤석열 정부 혼자 중국과 싸우려는 것인가”라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날 싱 대사와 이 대표의 만찬 관련 공세를 이어갔다. 김기현 대표는 “싱 대사가 작심한 듯 대한민국 정부를 비판하는데도 이 대표는 짝짜꿍하고 백댄서를 자처했다”고 지적했다.

중국 외교부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중국 베팅’ 발언과 한국 외교부의 항의에 대해 한·중 관계의 위기에 중국 책임은 없다고 반응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싱 대사 발언과 한국 외교부의 항의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올린 글에서 “현재 중·한 관계는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고 밝혔다.왕 대변인은 또 “양국 관계 및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중국의 입장과 우려 사항을 소개하는 것이 싱 대사의 임무”라며 “한국 측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초점을 맞추고 중·한 관계의 안정과 발전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초점을 맞추길 바란다”고 했다.

맹진규/노경목 기자 mae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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