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대상 북한 선박들, 가짜 보험증서로 세계 누볐다

영국 해상보험업자가 2016년까지 최대 100척에 무단 발급
국제사회 제재에도 핵·미사일 개발과 도발을 이어가는 북한의 선박들이 유럽 민간업체를 통해 만든 가짜 보험증서를 쥐고 세계 각지를 오간 정황이 포착됐다.1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금은 사망한 영국인 해상보험 업자 데이비드 스키너가 운영했던 'DGS 머린'이라는 업체는 2011년에서 2016년 사이 북한 선박 최소 29척에 가짜 보험증서를 발급했다.

DGS 머린의 한 전직 직원은 "회사가 보험증서를 발급한 북한 선박의 진짜 숫자는 100에 가깝다"고 말해 더 많은 선박이 제재 망을 빠져나갔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DGS 머린은 그 어떤 당국으로부터도 보험증서 발급 권한을 받은 바 없기에 이런 증서는 모두 사기였다고 FT는 지적했다.통상 외국에 정박하려는 선박은 보험 가입 증서를 제시해야 하는데, 북한 선박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결의에 따라 보험증서 발급이 금지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DGS 머린이 제공한 가짜 보험증서로 북한 선박들은 바닷길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전했다.
DGS 머린이 가짜 증서를 발급한 시기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 선박에 대한 보험증서 발급을 금지한 때와 겹친다.일례로 북한 선박 원산 2호와 오가산호는 각각 2016년 6월과 8월 DGS 머린의 가짜 증서를 받았다.

북한 깃발을 달고 항해하는 선박에 대한 보험 제공을 금지하는 안보리 결의 2270호는 그해 3월 나왔다.

북한 해운사 원양해운관리회사(OMM)가 2014년 쿠바로 무기를 밀수하다가 적발돼 안보리 제재 대상이 된 이후엔 OMM이 통제하는 선박에도 가짜 보험증서가 발급됐다.FT에 따르면 DGS 머린 측은 2011년 런던에서 북한 국영보험회사인 '조선민족보험총회사' 관계자들과 처음 접촉한 것으로 파악돼 이때 가짜 증서 논의가 오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DGS 머린의 가짜 보험증서가 북한 선박의 국제 운항 능력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봤다.

휴 그리피스 전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 조정관은 "명백한 제재 위반"이라며 "보험증을 통해 북한은 무기, 석탄, 석유 등 제재 물품을 운반할 수 있었고 북한 정권을 위한 수입을 창출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리피스 전 조정관은 "DGS 머린은 북한이 국제 제재를 회피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며 "(이 회사가) 수년간 북한의 대외무역 선박이 떠다닐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DGS 머린의 사기 행각은 설립자 데이비드 스키너가 2016년 52세 나이로 갑작스레 숨지면서 끝났다.

회사는 아들 니컬러스에게 넘어갔다가 곧 문을 닫았다.

아들은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아버지 생전에 DGS 머린의 불법 행위를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DGS 머린은 2012년 시리아 독재 정권이 통제하는 지역에서 나오는 원유를 수송하는 이란 선박의 보험 가입에도 연루돼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고 FT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