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수사 실적 올리려 허위자백 유도…승진에 눈먼 형사

필로폰 판매책과 어울리며 여행 다녀…허위 공문서도 작성
경기도 모 경찰서 강력팀에서 2014년부터 형사로 근무한 이모(51) 경위는 경감 승진을 위한 실적이 필요했다. 3년가량 마약 수사에 집중한 그는 첩보를 얻는다며 필로폰 판매책 등과 어울렸고, 함께 여행을 다니거나 돈을 빌려 쓰기도 했다.

덕분에 마약 사건 정보를 받아 수사 실적을 쌓았고 그 대가로 친한 마약사범들은 수사하지 않거나 구속하지 않는 등 편의를 봐줬다.

2020년 3월 이 경위는 마약사범들에게 대포 차량을 유통하던 A씨를 수사했다. A씨는 "십년지기 친구 B씨와 자주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실토하면서도 "그 친구는 빼고 나 혼자 마약을 한 것으로 해 주고 구속도 하지 말아 달라"고 이 경위에게 부탁했다.

당시는 B씨의 여자친구인 C씨가 이미 필로폰 투약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구속된 상태였고 A씨가 필로폰을 투약할 때 쓴 주사기도 경찰이 압수한 상황이었다.

앞으로 A씨를 정보원으로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한 이 경위는 불구속 수사를 약속하면서 B씨의 여자친구를 필로폰 공급 '윗선'으로 만들어 사건을 키우는 그림을 머릿속에서 그렸다. 그는 A씨에게 "이미 주사기까지 압수된 상황인데 이미 구속된 C씨한테서 필로폰을 받아 함께 투약한 것으로 정리하자"고 제안했다.

설득된 A씨는 이 경위가 말한 대로 허위 진술을 했고, C씨는 A씨의 공범으로 추가 수사 대상자가 됐다.
같은 해 9월 이 경위는 C씨가 구속된 서울구치소에 찾아가 필로폰 투약 혐의를 조사했다. 그러나 실제로 A씨와 함께 필로폰을 투약한 적이 없던 C씨는 추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 경위는 "이미 필로폰 투약과 매매로 재판받는 상황에서 투약 1건이 더 추가돼도 양형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무상 수수는 무혐의 의견으로 정리해 줄 테니 필로폰 투약만 인정하면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 유리한 양형 자료를 써서 법원에 내주겠다"고 회유했다.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인 마약 사건에서 중형을 선고받지 않을까 걱정하던 C씨는 결국 이 경위 말대로 허위 자백을 했다.

이 경위는 구치소에서 약속한 대로 이듬해 1월 "C씨는 수시로 마약 사건을 제보한 협조자로 다른 마약사범을 자수하게도 했다"는 내용의 양형 참고 자료를 꾸며 법원에 제출했다.

이뿐 아니라 이 경위는 평소 어울리던 마약사범에게 조사 내용과 구속영장 신청 여부 등을 알려주거나 마약사범들을 체포할 당시 찍은 영상을 자랑하듯 지인에게 휴대전화로 보내 유출하기도 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인천지법 형사5단독 홍준서 판사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 경위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홍 판사는 "피고인은 용인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공무상 비밀누설 역시 정보원 관리라는 변명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행위였다"고 판단했다.

이 경위는 1심 선고 후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으며 검찰도 맞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은 인천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1심 법원이 소송기록을 정리해 서울고법으로 넘기면 항소심을 담당할 재판부가 결정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