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실적 나쁘다고 감사인 선택도 못해' 앞으론 바뀐다
입력
수정
금융위, 직권지정사유 27개 中 16개 폐지·완화기업이 회계 감사인을 선택하지 못하고 당국의 지정을 받도록 하는 직권지정사유가 상당폭 줄어든다. 기업과 감사인간 연결을 일정 비중 이상 시장 원리에 맡기기 위해서다.
금융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주요 회계제도 보완방안’을 11일 발표했다. 금융위는 “2017년 10월 외부감사법 전부개정을 통해 각종 회계 제도를 새로 도입한 후 5년이 지난 만큼 효과를 따져 보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기업 지정감사 비중은 직권지정사유가 확대 시행된 2018년부터 꾸준히 늘었다. 주기적 지정제 시행도 비중을 확 높였다. 2018년엔 스스로 감사인을 선택하지 못한 상장사 비중이 6.4%였지만 작년엔 상장사의 절반 이상이 감사인 지정을 받았다. 올해는 약 45.2%가 지정감사를 적용받았다.
통상 기업이 회계법인을 자율적으로 선임하면 감사 비용·시간·인력 등이 시장 원리에 따라 정해진다. 회계법인들이 기업 감사에 경쟁입찰을 들어가기 때문이다. 반면 직권지정을 받으면 사실상 회계법인이 ‘부르는 게 값’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기업이 감사인을 자유선임 할 경우 시간당 감사 보수는 9만원대다. 직권지정시엔 이 비용이 12만원대로 약 33% 뛴다.
송병관 금융위 기업회계팀장은 “회계법인간 경쟁을 해야 감사 품질 개선 효율이 높아지는데 지정감사 비중이 너무 높으면 이같은 효과가 떨어진다”며 “지정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비중이 자유 선임 이상으로 과도하게 높은 것은 문제”라고 했다. 금융위는 기존 직권지정사유 중 두 개를 폐지하기로 했다. 재무기준 미달 사유와 투자주의환기종목 지정 사유다. 금융위에 따르면 이 두가지 사유가 그간 직권지정 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재무기준 미달 사유로 인한 지정이 25%가량이었다.
재무기준 미달 사유 폐지는 그간 재계에서 제기된 고충 의견을 반영했다. 기존엔 3년 연속으로 영업손실을 내거나 부(-)의 영업현금흐름이 발생한 경우, 또는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상장사는 감사인을 지정받아야 했다. 이를 두고 수익성이 이미 악화된 기업이 더 높은 감사 비용을 써야 해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코로나19 등 외부 환경 요인으로 실적이 나빠진 기업에 대해 지나친 책임을 지운다는 비판도 있었다.
송 팀장은 “그간 재무기준 미달 사유는 한번 적용되면 대상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회계학회도 이 규정과 관련된 기업이 회계 부정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실질적인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연구 결과를 낸 만큼 기업들의 부담을 완화하기로 했다”고 했다. 재무 상황이 심각하게 악회될 경우 관리종목 지정사유를 적용할 수 있는 만큼 부작용 우려도 적다는 설명이다. 금융위는 투자주의 환기종목 지정에 대해선 사실상 관리종목 지정사유와 중복된다는 점을 고려해 폐지하기로 했다.
경미한 감사 절차 위반에 대한 사유 14개는 완화한다. 서류 제출 기한을 맞추지 못하거나 지정기초자료를 제출하지 않는 등에 대해서다. 송 팀장은 “1차 위반시엔 과태료를 부과하고, 2차 위반시부터는 일정부분 고의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 감사인을 직권지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세부 완화 조항을 추후 공개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재무기준 직권지정사유 ‘일단 완화’에도 나선다. 직권지정 사유를 폐지하려면 외부감사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빨라도 1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송 팀장은 “법 개정에 상당 시일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일단 감독규정 개정을 통해 바꿀 수 있는 내용을 선조치할 것”이라고 했다. 재무기준 미달 사유로 직권지정을 적용받은 경우 지정기간 3년동안 똑같은 사유가 발생하더라도 최소 자유선임 계약기간을 보장한다. 상장사는 3년, 비상장사는 1년이다. 영업손실 등이 단기간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후 지정 처분 여부는 선행 지정기간이 끝난 뒤 다음 사업연도부터 재무수치를 기준으로 판단하겠다는 설명이다.
기존 연결재무제표상 수치를 기준으로 판단했던 재무기준 직권지정 대상 여부는 별도재무제표상 수치를 기준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지분 비중이 낮은 종속기업이 일시적으로 경영상황이 악화된 경우에도 지배기업이 직권지정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송 팀장은 “국내 기업들의 지배 종속 관계는 모기업의 지분율이 10~30%가량으로 종속기업의 경영 성과를 모기업이 100% 책임지는 구조라고 보기 어렵다”라며 “종속회사의 경영 성과를 모기업에 전가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금융위는 회사, 주주·채권자, 타 법령이 요청하는 경우 등 자발적 지정사유와 감리 조치, 관리종목 지정, 횡령 발생 등 회계부정 연관성이 높은 사유에 대해선 유지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이번 폐지·완화 조치가 완료될 경우 기업의 지정감사 비율이 40% 미만으로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