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고 냉방, 장사 끝나도 환한 조명에…전기료 年 2兆 '낭비'

에너지가 샌다
(1) 상가에서 버려지는 에너지

명동 가게 70% '개문 냉방' 영업
길거리 매대 조명 켠 곳도 수두룩

전국 도·소매, 식당 210만 곳
밤에 불만 꺼도 年 1.7조 절감
업소당 한 해 83만원 절약 가능
< 24시간 영업 아닌데…> 지난 8일 밤 12시께 서울 신논현역 일대. 영업시간이 끝난 지 한참 지났지만 내부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는 상가와 건물이 곳곳에 눈에 띈다. 에너지가 줄줄 새는데도 ‘에너지 불감증’이 만연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혁 기자
지난 7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일대. 한 카페에 들어서자 에어컨 냉기가 몸을 감쌌다. 기자가 30분가량 머물며 실내 온도를 재보니 22.3도였다. 실외온도가 25도 정도로 그다지 무더운 편이 아니었는데, 카페 안은 쌀쌀했다. 카페 직원 6명 중 5명은 긴팔 차림이었고, 겉옷을 입고 있는 손님도 많았다. 이곳뿐만 아니었다. 인근 카페로 옮겨 실내온도를 측정해 보니 22.5도였다.

다음날 오후 2시께 찾아간 신촌의 한 까페에선 온도계가 20.9도까지 떨어졌다. 정부가 권장하는 여름철 실내 적정온도는 26도인데 5도 이상 낮은 것이다. 서울 대치동에 있는 커피전문점도 상황은 비슷했다. 커피숍에서 만난 한 40대 남성은 “책 읽으러 왔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으슬으슬 추울 정도”라며 “이렇게까지 에어컨을 세게 틀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선선한 날에도 문 열고 냉방

지난 6일 서울 중구 명동 일대의 한 가게가 문을 활짝 연 채 영업하고 있다. 명동 일대 곳곳에서 문을 열고 에어컨을 트는 ‘개문냉방 영업’을 하는 상점이 많았다. 최혁 기자
한국경제신문 취재팀이 최근 서울 주요 지역을 둘러본 결과다. 정부가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과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 해소를 위해 작년 이후 전기요금을 40%가량 올렸지만 여전히 ‘에너지 불감증’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8일 오후 둘러본 서울 명동 일대 상가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이슬비가 내려 바깥 기온이 24~25도 정도였지만 상점은 대부분 문을 열어둔 채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었다. 기자가 명동 거리 약 300m를 걸으면서 직접 세어 본 38개 가게 중 27곳(71%)이 ‘개문(開門) 냉방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한 화장품 가게는 문에서 2m 정도 떨어진 곳에서부터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매장 직원이 모두 긴팔 차림이었다. 한 시민은 “여름철에 손님을 더 끌기 위한 것 같은데, 에너지가 줄줄 새는 현장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대낮인데도 가게 밖 매대에 조명을 비쳐놓은 가게도 많았다. 한 과자가게는 외부 조명만 60개가 넘게 켜놨다.

불만 잘 꺼도 무역적자 개선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가게 문을 닫고 냉방하면 하루에 아낄 수 있는 전기는 업소당 평균 4.4㎾h다. 한국전력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구입할 때 드는 비용은 ㎾h당 160.2원이고 전국 도·소매, 음식점은 210만 곳에 달한다. 이들 업소가 여름철 3개월(90일)간 문을 닫고 냉방기를 틀면 아낄 수 있는 금액은 1460억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업소당 6만9500원을 아낄 수 있는 돈이다.

여기에 상점들이 영업 종료 후 조명을 모두 끄면 업소당 하루평균 13㎾h의 전기를 추가 절약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하루 4억8000만원, 연간 1조7500억원이 넘는다. 업소당 절약할 수 있는 돈은 연간 83만3000원에 달한다.즉 ‘문 닫고 냉방’과 ‘영업종료 후 소등’을 같이하면 자영업자들이 연간 2조원에 가까운 전기요금을 아낄 수 있고, 가게 한 곳당 연간 90만2500원을 절약할 수 있다.

에너지 절약은 국가적으로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지난해 한국의 에너지 수입액은 1908억달러에 달했다. 전년 대비 784억달러(69.8%) 늘었다. 지난해 전체 수입액 대비로는 26.1%나 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에너지 수입 증가가 무역적자(지난해 472억달러 적자)의 핵심 원인”이라고 했다.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이란 불가피한 요인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에너지 절약만 잘 했어도 무역적자를 상당폭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에너지 다소비 국가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전력 소비량은 562만TWh로, 세계 7위다. 한국 인구는 5155만 명(2021년 기준)인데 한국처럼 제조업 중심 국가이면서 한국보다 인구가 60% 이상 많은 독일(8330만명, 549TWh)에 비해서도 전기를 더 많이 썼다. 일본은 1001TWh를 사용해 한국보다 높은 5위였지만 일본 인구는 1억2330만 명으로으로 1인당 전기소비량은 8118㎾h이다. 한국의 1인당 전기소비량(1만902㎾h)이 일본보다 35% 많다.석유 소비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석유 소비는 1억1600만t으로 세계 7위다. 독일은 1억700만t으로 10위였다. 일본은 1억6800만t으로 4위였지만 1인당 소비량으로는 1.36t으로 한국의 2.25t보다 40%가량 적었다.

박한신/이슬기 기자 p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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