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아우성에도…회계비용 2배 늘린 세계 유일 '지정감사제'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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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개선 무기 연기금융위원회는 지난해 9월 기업, 회계업계, 학계를 아울러 ‘회계개혁 평가·개선 추진단’을 꾸리고 회계제도 개선에 나섰다. 2017년 10월 외부감사법 전부개정안(신외감법)이 발효된 이후 이 법에 따라 도입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등의 효과를 놓고 경영계와 회계업계 간 논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회계학회에 연구용역을 맡겨 지난 2월 공청회도 열었다.
회계제도 일부만 보완
직권지정사유 27개 중 2개 폐지
자산 2조원 미만 상장회사
내부회계관리제 도입 5년 유예
재계 "핵심 빠졌다…매우 실망"
"비용·감사품질·업무효율 문제로
지정제 폐지 원했는데 곁다리만"
이런 과정을 거쳐 11일 금융당국이 내놓은 ‘주요 회계제도 보완 방안’에 대해 기업들은 “결과물이 너무 초라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와 연결내부회계 관리제도를 없애달라는 게 경영계 요구 사항이었는데 이 두 제도는 건드리지 않고 다른 것들만 개선안으로 나왔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도 “그동안 수많은 논의를 했는데 어떻게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 허탈하다”고 했다.
감사 비용만 급증…투명성은 ‘비슷’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제도다. 이를 두고 회계업계와 경영계는 서로 정반대 목소리를 높여 왔다.경영계는 폐지나 적어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감사인의 담당 주기가 짧아져 감사 품질은 저하됐는데 보수만 더 올랐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작년 상장회사 한 곳의 평균 감사보수는 약 2억7500만원으로 제도 도입 전인 2018년(약 1억3800만원) 대비 두 배로 뛰었다. 정 부회장은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기준 한국의 회계 투명성 순위는 2019년 61위에서 지정감사제 시행 직후 2년간 올랐다가 지난해 53위로 16계단 내려앉았다”며 “지정감사제는 회계 투명성 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방증”이라고 했다.회계업계는 감사의 독립성을 강화해 회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최근 기업 내 횡령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는 등 회계관리 강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연결내부회계 관리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경영계는 비용 대비 효용을 고려해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100~400개에 달하는 자회사를 일괄 관리할 이유가 딱히 없다는 얘기다.
코스닥협회 관계자는 “글로벌 투자 유치에 나설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은 중견·중소기업은 사실상 제도의 효용이 전무하다”며 “이에 비해 품과 비용은 많이 드는 일이라 도입 자체에 의구심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
“내년에도 자료 충분할지 미지수”
금융당국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당분간 유지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 “2020년 시행 후 3년밖에 지나지 않아 정책 효과를 가늠할 만큼 자료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경영계는 회계제도 개선책이 아무리 일러도 내년 이후, 현실적으로는 수년 뒤에야 나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질적인 정책 효과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시점이 내년부터여서다. 금융위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 감사인 지정 기간을 마치고 자유 선임으로 바뀐 기업 220곳의 사업보고서가 내년 3월에 처음 나온다”며 “이들의 회계 투명성이 유지되는지를 그때부터 따져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들은 전체 상장사의 10% 미만이고, 대부분 대기업이라 충분한 자료가 될지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상장사 절반 지정 적용
금융위는 이날 당국의 감사인 직권지정 사유를 일부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현행 27개인 감사인 직권지정 사유 중 두 개를 폐지하고 14개는 완화한다. 그간 직권지정 건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재무기준 미달 사유와 투자주의환기종목 지정 사유를 없애기로 했다.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도입 등의 이유로 지정감사 비중이 급격히 늘어 시장 경쟁이 줄어들자 내놓은 보완책이다. 2018년엔 감사인 지정을 받은 상장사 비중이 6.4%에 그쳤는데 작년엔 52.6%로 치솟았다. 금융위는 주기적 지정과 직권지정을 포함한 지정감사 비율을 40% 미만으로 내리는 게 목표다.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