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만들고 부른 노래, 창작일까 저작권 침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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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외 주체 저작권 인정 안 돼…학습 과정서 저작권 침해 논란 첨예
AI 활용도 높은 K팝 시장…"저작권 개념 진화해야" 원숭이가 찍은 '셀카'의 저작권은 원숭이에게 있을까? 코끼리가 그린 그림은?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여겨졌던 '인간 외 존재의 저작권'에 대한 질문이 최근 문화예술 종사자들 사이에서 묵직한 쟁점이 됐다. 이번엔 동물이 아닌 인공지능(AI)의 창작물이 문학, 미술, 음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오면서다.
K팝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AI 작곡가의 노래를 가수가 불러 발매하고, 나아가 노래를 부를 가수 없이도 AI가 합성한 목소리로 새로운 노래가 탄생하기도 한다. 이 같은 신기술을 시장의 건강한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AI 시대에 걸맞은 저작권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관리 방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가수 없이도 노래 만드는 'AI 작곡가'…"기존 저작권 침해" 반발도
현행법상 인공지능은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저작권법에서 저작권의 대상인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에는 당초 노래의 저작권자로 등록됐던 작곡 AI가 뒤늦게 저작권료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도 발생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한음저협)는 가수 홍진영의 노래 '사랑의 24시간' 등 총 6곡의 저작권자로 등록됐던 작곡 AI '이봄'에 대해 지난해 7월부터 저작권료 지급을 중단했다.
한음저협 관계자는 "저작권료의 징수 및 분배 규정은 저작권법에 기초해 이뤄진다"며 "저작권법에서 인공지능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저작권료 지급도 중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I의 저작권 인정 여부에 앞서 AI의 창작물이 기존 창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닌지를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AI가 창작물을 내기 위해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부터가 저작권 침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음저협은 최근 AI가 기존 저작물을 학습용 데이터로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한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해 "상업적·영리적 목적의 이용에 대해서도 제한 없이 데이터 사용을 허용하는 규정은 저작권자의 권익을 지나치게 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최근 해외에서는 캐나다의 유명 싱어송라이터 위켄드와 래퍼 드레이크가 협업한 신곡이라며 공개된 곡 '허트 온 마이 슬리브'가 AI로 두 사람의 목소리를 변형해 만든 가짜 음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같은 논쟁이 불거지기도 했다.
두 사람의 소속사인 유니버설뮤직은 주요 음악 플랫폼에 이 곡의 삭제를 요청하면서 "우리 아티스트의 음악을 이용한 생성형 AI 학습은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 뿐 아니라 AI 기술이 보급될수록 누구나 기존 창작물을 이용한 2차 창작이 수월해지면서 발생하는 저작권 침해 사례도 늘 수 있다.
최승수 변호사는 지난 4월 AI와 K팝을 주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AI가 창작한 콘텐츠가 나왔을 때 AI의 지분과 저작권을 따지기에 앞서 그 결과물이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 주장하는 원 권리자의 저항을 먼저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K팝 시장에서 수요 높아…"기술 발맞춰 저작권 개념 진화해야"
이 같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AI 기술에 대한 K팝 시장의 수요는 이미 높다.
이미 작곡과 프로듀싱 과정의 분업화 및 디지털화가 이뤄진 K팝 산업의 특성상 AI를 활용하면 그 생산성이 월등히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기존 창작물에 저작권을 가진 음반사나 기획사가 AI를 활용해 2차 창작물을 내는 일은 저작권 침해 소지도 적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하이브가 최근 AI 오디오 기업 수퍼톤과 손을 잡고 소속 가수 이현의 목소리에 AI 기술을 접목해 탄생시킨 새로운 아티스트 '미드낫'이 대표적이다.
지난 달 나온 미드낫의 첫 싱글 '마스커레이드'는 AI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어, 베트남어 등 6개 국어로 동시에 발매됐다.
곡 중간에는 남성인 미드낫의 목소리를 여성의 음색으로 바꾼 구간이 들어가기도 했다.
이 같은 하이브의 시도는 언어 장벽에 부딪혀왔던 해외 K팝 팬과 음악 종사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9일까지 유튜브에서 81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마스커레이드' 뮤직비디오에는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댓글이 영어나 한국어만큼이나 많이 달렸다.
해외 K팝 팬들은 '스페인어로 된 K팝 노래를 듣다니 느낌이 색다르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음악 전문 매체 빌보드는 지난 17일 미드낫을 다룬 기사에서 "청취자들로 하여금 어떤 언어 장벽도 넘어서도록 해 K팝 산업의 장애물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이브는 미드낫 프로젝트의 반응과 성과를 분석한 뒤 추후 다른 소속 가수를 대상으로도 AI 기술 접목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 기술이 방탄소년단이나 세븐틴 등 인기 K팝 그룹에 접목된다면 폭발적인 시너지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K팝의 창작물은 이미 한두명의 창작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체계화된 작곡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AI 활용에 대한 이질감이 적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창작 방식은 다양하고 복잡해졌는데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이 같은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며 "기술 변화에 맞게 저작권의 개념을 새로 정립하고 AI가 참여한 창작물에 대해 어디까지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AI 활용도 높은 K팝 시장…"저작권 개념 진화해야" 원숭이가 찍은 '셀카'의 저작권은 원숭이에게 있을까? 코끼리가 그린 그림은?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여겨졌던 '인간 외 존재의 저작권'에 대한 질문이 최근 문화예술 종사자들 사이에서 묵직한 쟁점이 됐다. 이번엔 동물이 아닌 인공지능(AI)의 창작물이 문학, 미술, 음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오면서다.
K팝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AI 작곡가의 노래를 가수가 불러 발매하고, 나아가 노래를 부를 가수 없이도 AI가 합성한 목소리로 새로운 노래가 탄생하기도 한다. 이 같은 신기술을 시장의 건강한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AI 시대에 걸맞은 저작권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관리 방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가수 없이도 노래 만드는 'AI 작곡가'…"기존 저작권 침해" 반발도
현행법상 인공지능은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저작권법에서 저작권의 대상인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에는 당초 노래의 저작권자로 등록됐던 작곡 AI가 뒤늦게 저작권료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도 발생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한음저협)는 가수 홍진영의 노래 '사랑의 24시간' 등 총 6곡의 저작권자로 등록됐던 작곡 AI '이봄'에 대해 지난해 7월부터 저작권료 지급을 중단했다.
한음저협 관계자는 "저작권료의 징수 및 분배 규정은 저작권법에 기초해 이뤄진다"며 "저작권법에서 인공지능의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저작권료 지급도 중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I의 저작권 인정 여부에 앞서 AI의 창작물이 기존 창작자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닌지를 따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AI가 창작물을 내기 위해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부터가 저작권 침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한음저협은 최근 AI가 기존 저작물을 학습용 데이터로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한 저작권법 개정안에 대해 "상업적·영리적 목적의 이용에 대해서도 제한 없이 데이터 사용을 허용하는 규정은 저작권자의 권익을 지나치게 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최근 해외에서는 캐나다의 유명 싱어송라이터 위켄드와 래퍼 드레이크가 협업한 신곡이라며 공개된 곡 '허트 온 마이 슬리브'가 AI로 두 사람의 목소리를 변형해 만든 가짜 음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이 같은 논쟁이 불거지기도 했다.
두 사람의 소속사인 유니버설뮤직은 주요 음악 플랫폼에 이 곡의 삭제를 요청하면서 "우리 아티스트의 음악을 이용한 생성형 AI 학습은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 뿐 아니라 AI 기술이 보급될수록 누구나 기존 창작물을 이용한 2차 창작이 수월해지면서 발생하는 저작권 침해 사례도 늘 수 있다.
최승수 변호사는 지난 4월 AI와 K팝을 주제로 열린 콘퍼런스에서 "AI가 창작한 콘텐츠가 나왔을 때 AI의 지분과 저작권을 따지기에 앞서 그 결과물이 자신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라 주장하는 원 권리자의 저항을 먼저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K팝 시장에서 수요 높아…"기술 발맞춰 저작권 개념 진화해야"
이 같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AI 기술에 대한 K팝 시장의 수요는 이미 높다.
이미 작곡과 프로듀싱 과정의 분업화 및 디지털화가 이뤄진 K팝 산업의 특성상 AI를 활용하면 그 생산성이 월등히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기존 창작물에 저작권을 가진 음반사나 기획사가 AI를 활용해 2차 창작물을 내는 일은 저작권 침해 소지도 적다.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하이브가 최근 AI 오디오 기업 수퍼톤과 손을 잡고 소속 가수 이현의 목소리에 AI 기술을 접목해 탄생시킨 새로운 아티스트 '미드낫'이 대표적이다.
지난 달 나온 미드낫의 첫 싱글 '마스커레이드'는 AI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어, 베트남어 등 6개 국어로 동시에 발매됐다.
곡 중간에는 남성인 미드낫의 목소리를 여성의 음색으로 바꾼 구간이 들어가기도 했다.
이 같은 하이브의 시도는 언어 장벽에 부딪혀왔던 해외 K팝 팬과 음악 종사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9일까지 유튜브에서 81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한 '마스커레이드' 뮤직비디오에는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댓글이 영어나 한국어만큼이나 많이 달렸다.
해외 K팝 팬들은 '스페인어로 된 K팝 노래를 듣다니 느낌이 색다르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음악 전문 매체 빌보드는 지난 17일 미드낫을 다룬 기사에서 "청취자들로 하여금 어떤 언어 장벽도 넘어서도록 해 K팝 산업의 장애물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하이브는 미드낫 프로젝트의 반응과 성과를 분석한 뒤 추후 다른 소속 가수를 대상으로도 AI 기술 접목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 기술이 방탄소년단이나 세븐틴 등 인기 K팝 그룹에 접목된다면 폭발적인 시너지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수는 "K팝의 창작물은 이미 한두명의 창작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체계화된 작곡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AI 활용에 대한 이질감이 적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창작 방식은 다양하고 복잡해졌는데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이 같은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있다"며 "기술 변화에 맞게 저작권의 개념을 새로 정립하고 AI가 참여한 창작물에 대해 어디까지 권리를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